울릉도 관광겸 성인봉 등산- 수필
짧은 일정에 관광 겸 산행을: 울릉도 성인봉
바다의 경치에 감탄사만 연발
1박 2일 간의 짧은 일정으로 관광 겸 성인봉 등산을 하기 위해 울릉도로 떠났다.
울릉도에 도착하니 오후 2시 30분. 등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내일로 연기하고 오늘은 유람선을 타고 섬을 한 바퀴 돌며 관광하기로 했다.
날씨가 좋아서 우리는 축복 받은 사람들이라 자축하며 유람선을 타고 파노라마같이 펼쳐지는 기암괴석과 바위 꼭대기와 틈새에 자생하고 있는 작품 같은 나무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북저바위, 독대암, 구멍바위, 용굴, 촛대바위 등등……. 푸른 바닷속에 우뚝우뚝 솟아 있어 신비스럽고 아름다워 감탄사를 연발하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유람을 끝내고 돌아온 호텔은 깊은 산 속에 별장처럼 있으면서도 깨끗하고 조용해서 더욱 좋았다.
이튿날 아침 8시.
호텔 바로 뒷길로 해서 해발 986미터인 성인봉을 향한다. 어젯밤에 이슬비가 내렸는지 풀잎에 맺힌 가녀린 이슬방울이 등산화와 바지가랑이를 살짝 적셨다. 연녹색 지대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산나물이 쫙 깔려 있고 싱그러운 오월의 풀 냄새는 코끝에 와 닿더니 심장까지 파고들었다. 무공해 지역인 자연 속에서 신선한 공기는 보약이라 생각되어 깊은 호흡으로 숨을 몰아쉬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무리 좋아도 산을 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르고 올랐지만 쉽사리 정상은 보이지 않았고 땀은 비오듯 온몸에 흘렀다. 그렇게 헉헉대며 3시간을 올라가서야 정상에 닿았다.
아!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삥 둘러 바다는 섬 하나 없는 수평선을 이루었고 바다 끝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울릉도에서도 가장 높은 성인봉 정상에 올라섰으니 한 눈으로 울릉도와 바다를 감상할 수 있었고 어렵게 올라가서인지 어느 때보다 기뻤고 감격의 시간도 길었다. 그러나 갈 길이 바쁜 우리는 그곳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3시 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하산하여 맛있기로 알려진 오징어, 호박엿, 취나물 등을 모두 사 가지고 배에 올랐다.
폭풍 속에서
울릉도에서 돌아오는 길은 매우 험하고 꿈 같은 고난의 길이었다. 처음 매표소에서부터 바람이 불어 배가 뜰까말까 망설이는 기색이더니 괜찮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배는 출렁거리는 파도 속으로 출항했다.
바닷가를 벗어나 10분 정도나 갔을까. 덜크덩하고 심한 충격이 오더니 배가 몇 미터나 점프했다. 모두들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보니 창 밖에는 집채 만한 파도가 무섭게 밀려오며 배를 삼켜버릴 듯 사납게 덤벼들었다. 마치 굶주린 늑대가 울 안에 갇힌 먹이를 보고 금방 집어삼킬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 같았다.
바다는 점점 더 사납게 폭풍으로 변하여 세차게 배를 공격하며 유리창을 때렸다. 몸 안의 오장육부가 다 떨어져 나갈 듯했고 한쪽에 정리해 놓은 배낭들도 사방으로 흩어져 보이지도 않았다. 심상치 않음을 짐작한 듯 일행은 말을 잇지 못하고 의자 받침대를 꼭 잡고 있는데 승무원들이 와서 뒷자리로 가면 충격이 덜 하다고 말했다. 모두들 엉금엉금 기어가며 뒤로 가보니 사람들은 이미 배 바닥에 엎어져 누워 있고 배멀미에, 파도에 곤욕을 치루고 있었다.
이렇게 몇 시간을 어떻게 가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5시 30분 쯤부터는 배가 고장이 나서 느린 속도로 파도를 타며 항해하였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서 캄캄해지고 라디오에서는 그때야 폭퐁주의보가 내렸다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더 이상 큰 배가 없어 구조할 방법도 전혀 없다며 잠수복을 입으라는 배 안의 안내방송이 울려 퍼지자 모두들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텔레비전에서나 나오는 사고가 드디어 내게도 닥쳤구나! 이 칠흑 같은 밤 헬리콥터가 온다한들 구조할 방법이 있겠는가 저 시퍼런 바닷물에 빠지면 영영 고기밥이 되겠지, 그렇게 되면 내일 조간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나오겠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아직 할 일도 많은데…….
나는 배낭을 찾았다. 어디에 쳐박혀 있는지 의자 밑을 샅샅이 찾아보았다. 겨우 찾아서 방수복을 꺼내어 입고 끈을 다 묶었다.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시체라도 빨리 찾을 수 있게 빨간 방수복을 입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이 빨리 받아들이자하고 눈을 감았다. 각자의 종교를 찾아 기도하는지 배 안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고 유리창을 덮치는 파도 소리뿐이었다. 아이들과 남편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그러다가는 지난날의 아름답던 추억 속에 깊이 빠져 현실을 까맣게 잊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고 몇 시쯤 되었나 눈을 떠보니 멀지 않은 곳에 불빛이 빤짝빤짝 보였다. 아! 육지의 불빛이다 이제 살았구나. 나는 작은 소리로 ”어머 저기 불빛이 보여요!” 그때야 침묵을 깨고 여기저기서 두런두런 말문이 열렸다. 모두 안도의 숨을 내 쉬며 길고 긴 악몽에서 깨어났다.
정확히 8시간 30분이나 걸려 후포항에 도착하였다.
해운 항만청에서 도시락을 주며 집까지 데려다 준다 어쩐다 서비스를 하지만 우린 곧장 대기해 놓은 관광버스로 대전을 향해 출발하였다. 이젠 다시는 배를 타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대전에 도착하니 새벽 5시였다. 남편과 아이들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나를 맞아주었다.
사람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음을 비웠을 때 평안하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실감한 여행이었다. (1995. 5.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