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작품: 태백산- 산행기
신의 작품: 태백산
함박눈만 내리면 태백산에 가고 싶다. 그 만큼 눈 쌓인 태백산은 매력적이며 또한 위험하지도 않아 히프짝만 땅에 대고 내려오는 즐거움이 만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말로는 다 형용할 수도 없으며 상상도 안되는 태백산을 보았다.
겨울 산행에 멀고 높은 장거리 산행을 잡아 놓고 나면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없지 않았다.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막히지는 않을까, 눈이 오지 않아 설경을 못 볼까, 열심히 공부는 하지만 길을 몰라 헤매지는 않을까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일어날 시간이 된다.
사진은 20012년 1월
이번에는 더 걱정이었다. 지 난번 산행 때 다음 태백산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가야 한다고 약속했다. 새해 첫 주에 태백산을 가기로 약속하였으나 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갑자기 취소가 되는 바람에 회원들이 잔뜩 기대했던 산행에 차질을 가져 혼동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만큼은 만족하게 다녀와야만 했다. 그런데 또 새벽 뉴스에 강원도 산간 지방에 차를 통제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사님! 어떻하지요? 길이 막혔다는데,” 기사는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가보는 거지요” 하고 말했다. 나는 거기서 힘을 얻어 “그럽시다! 가다가 못 가면 아무 산이나 등산하고 오면 되지요” 하며 42명을 태운 우리 버스는 새벽 6시에 출발했다.
우리는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다. 대전에는 눈이 오지 않았는데 충북 괴산 쯤 가니 눈이 조금씩 날리면서 산과 밭에 하얗게 쌓였다. 얌전하게 차곡차곡 내려 쌓인 눈은 온 세상을 소복소복 덮었고, 나뭇가지들은 하얀 눈꽃을 피웠다. 회원들은 올해 들어 처음 보는 백색의 물결에 환호성을 쳤다.
내내 그런 풍경을 보며 태백산 유일사 입구 주차장에 닿았다.
눈이 많이 와서 우리가 길을 내며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 했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발자국이 있었다. 우리 차와 경상도에서 한 차가 와서 70~80여 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은 넓은 길로 조금 수월하다 하여 그 사람들은 그 쪽으로 올라가고 우리는 직진하여 처음부터 가파른 지그재그 오르막 길로 올라갔다.
앙상했던 나무들이 하얀 눈으로 치장하고 작은 풀 잎새 하나 하나에도 눈꽃이 핀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이쪽 길이 조금 어렵다하여 앞서 올라간 발자국도 없는 하얀 눈길을 밟으며 능선으로 능선으로 정상을 향해 올랐다.
태백산의 자랑거리인 주목 군락지에 도착했다. 자연만이 빚어 낼 수 있는 신비의 작품이였다. 하얀 눈으로 천지를 덮어버린 빙하의 나라, 환상의 나라. 주목나무의 묵은 가지는 꼭 노루 사슴 뿔처럼 하늘 위에 솟아있고, 그 잎새는 튀김옷을 입혀 바삭바삭 튀겨놓은 것처럼 나뭇가지 위에 있다. 온 산의 철쭉은 하얀 산호초가 되어 물결을 이루었다. 닿으면 떨어질까 쏟아질까 가만가만 몸을 피하면서 다녔는데, 한 번 손으로 만져보니 꽁꽁 얼어붙어 다그락 다그락 소리가 울렸다.
사진 기사들이 때를 만나 여기 저기서 아름다운 사진을 찍기 위해 받침대 위에 사진기 놓고 사진을 찍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계속 입을 다물지 못하고 천제단이 있는 정상에 올라섰다. 천제단은 움막처럼 돌로 둥그렇게 쌓아 놓고 가운데에는 ‘한배검’ 이라고 쓴 입석이 있다. 그 안에는 정성을 드리며 기도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태백산! 이름도 장엄한 태백산에 오면 나도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진다. 기도하면 금방 내 목소리가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이 감격스럽다.
갑자기 함박눈이 펄펄 날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먼 곳의 조망은 보이지 않아 눈 앞에 있는 풍경 만으로 만족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당골로 내려오는 길은 눈썰매장이 따로 없었다. 히프짝만 땅에 대면 그냥 미끄러져 내려왔다. 모두가 천진난만한 아이들처럼 좋아하며 빨리도 내려왔다.
얼음조각 공원에서는 눈꽃축제를 하기 위하여 얼음덩이를 쌓아놓고 아직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모양으로 깎아 내리며 분주한 모습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태백산에 와서 이 아름다움을 보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2002.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