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의 백운산- 산행기
운이 좋은 날 :백운산
백운산의 설화와 매화마을의 매화꽃을 보고
누구나 봄을 기다린다. 겨울이 싫어서가 아니고 새 생명이 움트고 싹 트는 꽃피는 봄을 좋아한다. 나는 봄을 기다리지 못하고 봄을 찾아 매화꽃을 보러 매화마을을 갈 생각으로 광양에 있는 백운산을 정했다. 먼저 지도를 꼼꼼히 찾아 살펴보고 광양시청 관광과로 전화해서 입산통제는 아닌지, 어느 코스가 가장 좋은지 알아보고 출발했다.
대전 진주간 고속도로를 벗어나 남해고속도로 빠져 광양 나들목으로 나갔다. 조금 가다 보니 백운산의 이정표가 있어 금방 찾을 수 있었고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이 있어 백운산임을 알아챘다.
관광과에서 친절하게 알려 준대로 찾아간 곳이 옥룡면 진틀. 우리가 도착해 보니 벌써 관광차가 3대나 와 있었다. 길게 펼쳐진 산의 능선길이 완만해 보이고 따뜻하게 보여 재미있을 것 같아 마음이 설레었다. 또한 높은 봉우리마다 하얀 눈꽃은 벚꽃이 만발한 것처럼 피어있어 마음을 재촉케 하였다.
우리 회원 39명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내달려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왜 그리 빨리 가느냐 물으니 “저 눈꽃이 녹을까봐 그래요”했다. 그렇다. 어디 나만이 마음이 설레었겠는가. 이산에는 대개 삼림욕장에서나 볼 수 있는 키가 크고 100년은 넘게 보이는 큰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고로쇠나무가 많아 여기저기 하얀 비닐호수가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어떤 나무는 한 나무에 3-4개씩 꽂아 논 것도 있어 불쌍한 생각마저 들었다.
요즘 날씨가 따뜻해서 이젠 완연한 봄이구나 했더니 산중턱에서부터는 하얀 눈이 쌓였고 마른나무 가지에는 녹다가 얼어붙은 수정 같은 얼음꽃이 방울방울 햇볕에 반사되어 눈이 시리게 아름다웠다. 오랫 동안 산에 다니다 보니 얼음꽃도 다양하게 보았다. 오래 전에 군자남봉에서 보았던 氷花는 잊혀지지 않는다. 그 많은 나무 가지에 하나같이 한판에 찍어낸 머리 빗 모양으로 터널을 이루었다. 그때의 그 신비스런 氷花는 다시 보지 못했다.
올라갈 수록 나무들은 하얀 눈꽃으로 변해 백색의 물결이었다. 따뜻한 남쪽 지방에 매화꽃을 보러왔는데 눈꽃이 웬 말인가.
우뚝 솟은 백운산(해발 1,217.8미터) 정상의 암봉에 오르자 남해안 일대가 모두 보였다. 어쩌면 남해의 지도를 펴놓고 보는 것 같이 전망이 최고 좋은 산이라 생각되었다.
북으로는 지리산이 노고단에서부터 천왕봉까지 펼쳐있었다. 마치 포카라에서 보는 록키산맥처럼 지리산은 하얀 설산으로 하늘과 맞닿았다. 광양제철의 건물은 멀리서 보아도 웅장하였다.
정상에서 내려와 눈꽃 속에서 점심을 먹은 후, 또 다시 행군은 시작되었다. 시야가 탁 트인 1100봉에 올라서니 여기는 눈이 오지 않았는지 눈은 없고 따뜻한 봄 기운이 돌았다. 우리가 가야 할 능선 위에 금방 아지랑이가 아롱아롱거릴 것만 같이 따뜻해 보였다. 빨리 걷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푸른 솔밭을 지나고, 억새풀밭을 지날 때는 영남의 알프스가 떠오를 정도로 널따란 평원이었다.
2시간 정도 능선을 밟고 억불봉이 올려다 보이는 넓은 공터에서 광양제철 수련장으로 하산했다. 깊은 산 속에 수영장까지 갖추어 놓은 수련장을 보니 참 깨끗하게 잘 지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를 타고 우린 또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 다압리 매화마을을 찾아갔다. 섬진강 강가의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논과 밭둑에는 하얗게 꽃이 만발했다. 좀 전에는 하얀 눈산에서 눈꽃을 보고, 이젠 백운산 넘어에서 활짝 핀 매화꽃을 보았다. 등 하나를 놓고 하루에 겨울과 봄을 넘나들었다.
섬진강을 내려다 보고 있는 주변의 산골 마을은 동화 속에서 상상했던 그 마을 그대로였고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그 동요 속의 나라였다. 오막살이 굴뚝에서는 지금도 나무를 지피는지 저녁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언젠가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에 대한 시를 읽어본 기억이 났다. 시를 읽으며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상상을 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골 마을에 와 본다면 누구나 마음은 시인의 마음이 될 것 같다.
하동으로 다시 나와 섬진강 휴게소 식당에서 제첩국을 먹고 포만감에 행복하기만 하였다.
오늘은 때 아닌 설화와 빙화를 보고 따뜻한 봄날의 소나무길, 억새길, 숲 속의 깨끗한 수련장, 섬진강 매화꽃을 골고루 만났다. 그리고 재첩국까지 먹었으니 운이 좋은 하루였다. (2002.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