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등산앨범-산행기

지리산 종주-산행기

산의향기(백경화) 2013. 1. 19. 21:50

노고단에서 천황봉으로- 지리산 종주

 (1996. 8. 27~29)

 

 

방바닥은 물이 고여 흥건하고 빨랫줄에서는 물이 뚝뚝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노고단 길은 무거운 배낭탓인지 땀과 비가 온몸을 적셨다. 그래도 즐겁고 설레는 마음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몰려오는 안개와 구름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이고 길이 미끄러워 조심하였다. 임걸령 샘터에서 싸 갖고 온 도시락을 먹고 나니 비가 조금씩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삼도봉에서 뱀사골로 내려가지 말고 쭉 내려가다 오른쪽 길로 가야 했다. 헬기장에 가서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10m 앞길도 보이지 않아 이정표를 보고 전진했다.

토끼봉을 지나 명선봉에 오를 때는 캄캄해지더니 굵은 빗줄기가 억수로 쏟아져 바로 앞도 보이지 않았다.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계속 내려 온몸은 빗물과 땀으로, 심지어는 등산화까지 흠뻑 젖어 어떻게 할까 대책이 서지 않았다.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산 위에서 물 속을 걸었고, 5시가 넘어서야 연하천 산장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움막같이 작은 산장은 우릴 다 수용할 수 없는데 우린 모두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젖은 옷에 젖은 신발, 찬 마루바닥, 더구나 전기불도 없고 큰일났다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슬비가 내리며 먹구름이 시커멓게 몰려왔다. 다른 팀에서 몇몇 회원들이 포기한다며 수근거렸다. 그러나 나는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에 젖은 옷을 다시 입고 8시 10분에 출발했다. 또다시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이 어느덧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비쳐 모든 산하가 다 보였다. 이제야 지리산에 온 실감이 났다. 젖은 옷과 등산화가 모두 말라 상쾌하기까지 했다.

벽소령에서는 산장을 짓느라 기계 소리가 요란하게 산을 울렸다. 선비샘에서 식수를 뜨고 칠성봉, 영신봉, 세석평전을 지나 5시 30분 경, 드디어 장터목 산장에 도착했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일출을 보고 난 후 힘이 솟아 발걸음이 가벼웠다

 

장터목 산장은 넓고 깨끗해서 편히 잘 쉬었다. 4시 20분에 천왕봉으로 출발. 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 반짝거리고, 둥그런 달님은 나를 따라다니며 환하게 비춰 주어 걷기에 좋았다. 오늘은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발걸음이 가벼웠다.

 

5시 40분에 정상에 도착했으나 이게 또 웬일인가? 갑자기 회색 구름이 하늘을 덮는 것이었다. 몇 년 전 법계사로해서 천왕봉에 올라갔을 때도 갑자기 맑다가 구름이 몰려와 일출을 못 보았는데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일어난 것이었다. 크게 실망하여 사진이나 찍자 하고 렌즈를 보는 순간, 갑자기 해가 뜬다며 소리쳤다. 정말 동쪽 하늘에 붉은 해가 실눈썹같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점점 위용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거기에 구름이 가로줄을 띄워 더더욱 아름다웠다. 주위의 구름들은 아름다운 조명을 받은 것처럼 자신의 색깔로 해를 에워싼 모습이 너무나도 찬란하였다. 모두 감격해서 애국가를 불렀다. 이틀 동안 힘들게 비를 맞고 온 보람이 있었다. 나는 일출을 보고 나니 힘이 솟았다.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할 일을 다 마친 사람처럼 마음도 상쾌했다.

모두 가벼운 발걸음으로 장터목 산장에 다시 내려와서 아침을 해 먹고, 10시에 출발해서 백무동에 1시 30분에 도착하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고생을 해 보았지만 즐거움은 몇 배나 더 큰 산행이었다. (1996. 8. 2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