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포토 에세이

수필- 소록도

산의향기(백경화) 2010. 4. 1. 21:09

  역사기행 : 소록도

내가 오늘 어른이 되어 그들 곁으로 간다.

  소록도 하면 어린 시절 나환자들을 생각하면서 무서워했던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사람 대접은 커녕 길에서 만나면 무서운 짐승을 만난 것처럼 달아나며 경계했던 어렸을 때의 철 없던 생각을 하며 내가 오늘 어른이 되어 그들 곁으로 갔다.

대전 YWCA 회원 227명은 5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나란히 호남고속도로를 달렸다. 언제부턴가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 약간은 마음이 설레면서 기분은 착잡했다.

차창 밖에 스치는 들녘은 어느 사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길가의 코스모스는 활짝 웃으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밭둑의 감나무에 노란 감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려 있어 어릴 때의 고향을 본 듯 정겹기만 했다.

어느덧 보성군 벌교를 지나 고흥군 녹동항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바람을 타고 달려온 물 비린내가 코끝으로 다가와 우리를 맞이했다. 누군가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섬이 소록도라 말했다. 소록도는 평화의 섬처럼 느껴졌다.

큰 철선을 타자마자 뱃머리를 돌리는가 싶더니 금세 섬에 도착하였다. 섬에 내리자마자 우리는 관광지에 온 듯 숲 속의 공원을 돌아보며 그 아래에서 싸 갖고 온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후 교회의 장로라는 분이 봉고 차를 몰고 와 우리를 실어 날났다. 순간 운전하시는 그분의 손가락이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제야 소록도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소록도는 나병환자 외 일반사럼이 전혀 살지 않는 곳으로 함부로 일반인의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미리 예약하고 정문에서 확인한 후에 통과시켰다.

한 10분 정도 차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큰 소나무들이 늘어선 바닷가의 경치는 참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해변가의 어느 고급 별장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제일 먼저 주민들이 집단으로 생활하는 살고 교회로 들어갔다. 많은 한센병 환자(지금은 나았음)들이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시름시름 앓으며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었고 모두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반쯤 감겨버렸거나 아니면 아예 썬그라스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손이 잘린 사람, 손가락이 없는 사람 제대로 성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우리가 아셀크럽의 크로마하프 연주로 찬송을 부르자 그 쪽에서는 답례로 남자 몇 명이 하모니카를 불며 북을 치고 여자 두 사람이 찬송을 하는데 그렇게 잘 할 수가 없었다. 그 교회의 목사 말에 의하면 그들은 청와대까지 가서 연주를 하여 많은 칭송을 받았다고 했다. 목사는 젊고 유능한 그들의 아버지이고 하나님이었다. 평생을 그들과 같이 살겠다는 각오를 지닌 정말 대단한 선교자였다.

 

예배가 끝난 후 우리들은 병원 건물의 관람실에서 자막자막 보여주는 필름을 보았다. 일제시대 때 강제로 수용된 환자들이 겪은 고난과 그 건물과 공원을 조성하며 피땀으로 얼룩진 그들의 장면이 처참했다. 중노동에 시달리며 맞아 죽기도 하고 자살하기도 했다. 벌로 감금실에서 단종수술을 받기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눈뜨고는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견디기가 어려웠으면 죽을 줄 알면서도 섬을 탈출하려고 헤엄쳐 나가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을까? 마음이 아팠다. 조금 전 교회에서 본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모두 그 고통을 겪었겠지 하고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우린 그들이 조성하고 가꾸어 논 중앙공원을 보고 또 놀랐다. 100년이나 넘은 아주 큰 나무들이 잘 다듬어져 있어 예술적이었다. 황금편백 향나무는 마치 수백 개의 황금부채를 펴놓은 듯한 모양이었고 가이스카 향나무는 뭉게뭉게 뭉게구름 모양으로 하늘로 올라가듯 아름다웠다. 금목서는 향수를 뿌려놓은 듯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으며 그밖에 회귀한 능수매화 흴펜백나무가 이렇게 멋있을 줄이야. 우리 나라 그 어디에서도 못 보았던 아름다운 정원수가 여기에 있었다.

나병 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의 시비가(돌로 3미터 됨) 하늘을 보고 누워 있다. 한하운의 시는 모두 그때의 상황을 너무나 잘 표현했고 아픔과 연민, 병을 낫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소록도! 말만 들어도 우리와는 단절된 곳으로 생각했던 곳. 그러나 새끼 사슴의 형상을 하고 있어 소록도라는 곳. 알고 보니 평화로운 곳이었다. 소록도 소식지를 읽어보니 어느 기자가 소록도는 천사의 섬이며 소록도의 봄은 천사의 발걸음 소리처럼 온다고 했다. 나도 동감한다. 섬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마음이 평온해졌다. 속세를 떠나 휴양지에 간 느낌이었다. 그들의 얼굴과 육신은 썩어서 문드러졌지만 진짜 얼굴은 천사였다. 그들과 많은 대화는 못 해 보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욕심도 시기와 질투도 없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하느님만 믿고 의지하며 아무런 고통 없이 살아가는 그 자체였다.

오늘 우리는 떼지어 그 사람들을 구경하러 간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위문이든 구경이든 관여치 않고 떳떳한 그들의 모습이 한결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소록도라는 섬의 거부감도 인식도 확 달라졌다. 갈 때의 마음은 그들을 어떻게 대할까 좀 조심스러웠는데 가서 보니 그들은 정신도 건강도 활기가 있어 보였고 아무 부끄럼 없이 떳떳한 모습으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앞으로 국가나 국민들이 끊임없이 사랑으로 그들을 대해 준다면 그들은 과거의 고통을 잊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2000.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