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포토 에세이

말만 들어도 마음 설레는 지리산- 산행기.

산의향기(백경화) 2010. 7. 17. 21:38

지리산(천왕봉) 해발 1,915미터

(2003. 10.30.)  

 

지리산! 말만 들어도 마음 설레는 지리산. 10월 30일 오전 6시 출발. 이렇게 날짜를 잡아놓고 회원들한테 광고는 했으나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천왕봉을 오르려면 1박 2일 아니면 무박으로라도 가야만 하는데, 당일 코스로 잡았으니, 해는 짧고 게다가 날씨까지 흐린다면 보통일이 아니다. 늦어도 5시전에는 하산해야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출발 시간을 앞당기던지 아니면 무슨 수를 써야 할 것 같다.

나는 용문산 의 백운봉을 머리에 담고 지도를 준비했다. 산행지를 변경할까하고. 이때 마침 한총무한테 전화가 왔다. “회장님 내일 6시에 출발하지요?” “그래요. 그런데 용문산으로 갈까하는데....” “회장님, 회원들이 지리산에 간다고 모두 좋아서 기다리고 있는데요.” 하면서 서운한 눈치다. 그렇다. 10월 초부터 계획했던 날로 마음들이 부풀었는데.

 

나는 가기로 결정했다. 설악산 공룡능선도 잘 갔다 왔는데, 그때처럼 만 간다면 대한민국에서 못 갈 산이 없다. 우리는 예정대로 6시에 출발하여 덕유산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단성으로 나가 중산리주차장에 도착하니 8시 50분이 되었다.

코스는 칼바위- 법계사- 천왕봉으로,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장터목으로 가서 중산리로 하산하기로 하고 떠났다. 되도록 5시까지는 주차장에 닿을 수 있도록 하자고 한 뒤 산으로 들어섰다.

 

오늘따라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무척 상쾌하다. 길이 미끄럽지도 않을 테니 안심이 되었다. 들어서는 길목의 다리에서 큰 계곡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단풍이 우릴 즐겁게 환영해준다. 좋은 예감이 든다. 회원의 대다수가 이번이 처음으로 천왕봉을 가게되니 한시라도 빨리 가고싶어 발길이 가볍기만 하다.

칼바위를 지나고 쇠로 만든 출렁다리를 지나고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은 장터목 가는 길이다. 하산할 때 그 길로 내려올 거라고 말해 주었다. 법계사까지 가는데 꼭 2시간 걸렸다. 아직 올라오지 못한 회원들이 있어 나와 몇몇 회원들은 법계사에 들렸다. 부처님 사리탑에 합장하고 법당에 들어가 기도했다. 오늘 우리회원들 무사히 산행 마치고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나왔다. 그때야 후진들 기진맥진하여 올라왔다. 이정애씨는 도토리묵을 해 가지고 무겁게 짊어지고 왔다. 정상에서 먹으면 더 맛있겠지만 무거우니 먹고 가기로 했다. 상추와 깻잎을 넣고 버무려 먹으니 어찌나 맛있는지 더 여럿이 먹지 못한 게 아쉬웠다.

 

이제 2시간 거리의 가파른 길만 남았다. 계속 오르기만 하니 무척 숨이 찬다. 다리도 아프다. 웬만한 산은 1시간에 2킬로미터는 가는데 지금은 1.2킬로뿐이 못 왔다. 통천문을 지나고 0.7킬로미터가 왜 그리 먼지 한발 한발이 천근이다. 앞서간 회원들은 정상에 섰고 천왕봉 바로 밑에 기어올라가는 회원들을 보니 더 힘이 든다. 드디어 정상에 섰다. 36명 전원이, 그렇게 그리워하던 천왕봉에 섰다. 장하다 우리 회원들,

세상 천지가 모두 산이다. 초록색 산 등줄기가 천왕봉을 향해 엎드려 있다. 저 아래에 있는 산은 노랗게, 또는 빨간색으로 수를 놓고 침묵에 잠겨 고요하다. 수천 미터 상공에서 산악지대를 보는 느낌이다. 날씨가 맑아 하늘 끝까지 보인다.

 

<천왕봉아래서..... 에구 힘들어 쉬어가자.....>

 

조금 전 지치고 힘들었던 것 잊어버리고 기쁨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그곳에서 대자연을 내려다보며 점심을 먹었다.

1시 40분, 갈 길이 바쁘다. 장터목으로 출발했다. 제석봉의 고사목 지대를 지날 때면 넓은 광야를 달리는 기분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시원하다.

죽어서도 천년을 산다는 구상나무의 고사목들이 패잔병이 되었다. 몸쓸 바람들이 때려 눕혔나 보다. 한때는 인간들에 손에 의해 불에 타더니 이젠 영영 쓰러트렸구나. 5년 전, 내가 이곳에 왔을 때 너희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며 시 한편을 썼지.

古木(고목) -지리산 제석봉에서-

해발 1800미터

고산 준령에

발가벗고 서 있는 고사목

6.25때

불길에

생죽음 당하고

너무나 억울해서

차마 썩지 못하고

잿빛으로 뭉그러진 육신

비바람 눈보라에

살점은 씻겨 나가

희색빛 뼈다귀만 고스란히 남았다.

지리산은 혼귀의

국립묘지다.

장터목 샘터에서 졸졸졸 시원하게 흐르는 샘물을 먹고, 빈 병에 물을 채우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길은 돌길이지만 잘 닦아 놓아 빨리 걸을 수 있었다. 한동안 내려오니 이곳도 아주 큰 계곡이 있다. 직벽 폭포가 있어 비가 많이 오면 굉장히 아름다운 폭포가 될 것이다. 어느덧 올라가던 길과 합류가 되어 이제 거의 다 내려온 것을 알았다. 천왕봉에서 장터목으로 중산리까지 오는데 꼭 3시간 10분 걸렸다. 참 빨리도 내려왔다. 그래서 8시간만에 산행은 끝났다. 정말 장하다 .우리 아줌마들. 나는 오늘도 하늘을 향해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중산리-칼바위-법계사-천왕봉-제석봉-장터목-홈바위폭포-중산리(8시간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