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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포토 포엠

시/가족에 대한 4편 (18.19.20.21.)

 




이유 

시/ 백경화

 

이 나이에 내가 책을 가까이 하는 것도 글을 쓰게 된 것도

어머님 때문입니다

외손녀를 보는 것도 거실에서 공부하는 것도

다 어머님 때문입니다

어머님은 나를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전부이십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기나긴 밤도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만족해 하십니다

그런 어머님이 계시기에 나는 시를 쓰고 있습니다


 

 

마지막 교신

 

병마와 싸우다 쓰러지신 아버님

급한 연락 받고 병원에 가보니

고르지 못한 숨결이 내 가슴을 저민다

 

아버님 아버님 부르는 나에게

뭐라 하실 말씀 있는 듯 하지만

숨결만 더욱 거칠어진다

 

링거액 줄줄이 꽂은 채 침대에 실려

어디론가 자리를 옮기시는 당신의 눈빛

그것이 마지막 나눈 교신일 줄이야

나는 몰랐다

   

 

나는 압니다

 

당신은 모르실 겁니다

이 아픈 마음을

당신은 모르실 겁니다

내가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는가를

그러나 나는

당신의 마음을 다 압니다

자동차 시동을 켤 때 떨고 있는 손을

눈물은 보이지 않으나 울고 있는 마음을

나 갔다 오리다 말 못하는 그 가슴을

당신은 애써 감추려 하지만

나는 보았습니다

나와 똑같은 그 마음을

 

 

 

 

당신과 떨어져 있으면

시간이 많으리라 했는데 더 바빴습니다

당신이 없으면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만나리라 했는데

더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떠나면서 내 가슴에

이상한 끈을 던져주고 떠나셨습니다

청실 홍실과 세월을 엮어 만든

길고 튼튼한 끈을 던져주고 가셨습니다

 

나는 그 끈을 놓칠까봐

하루도 긴장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굵은 매듭 어루만지며

그 위에 무지개 빛 수를 놓으며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습니다.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