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외국여행기

백두산 등반기

산의향기(백경화) 2018. 8. 30. 05:55

백두산 반쪽 종주 산행기

(1999. 8. 16~21) 5박 6일

 

오래전에 써 놓았던 산행기를 이제야 올린다. 사진도 필름 사진 스캔하여 올린다.

새벽부터 길도 나지 않은 길로 등반을 하면서 비는 오고 사진은 찍을 수가 없어 카메라를 갖고는 갔지만 찍지 못했다.

더구나 하루 종일 비가 와서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하고 가이드가 찍은 사진 몇 장이 전부다.

 

 

 

 

내가 본 백두산․1 중국과 백두산

 

백두산! 우리의 靈山인 백두산! 동틀 무렵 온갖 힘을 다해서 마천 누에 올라서는 순간,

광대하게 펼쳐진 백두산과 한치의 미동도 없는 천지는 깊은 잠에 든 것처럼 고요하고 엄숙했다.

나는 벅찬 가슴으로 와~ 외쳤다.

 

대전 YWCA 등산 5개 팀 중에 우리 C팀과 상록수, 그리고 호산나 팀과 함께 51명의 회원들이 출발했다.

중국 심양으로 가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밤 9시에 도착한 곳은 연변에서 가장 큰 대우호텔. 이 호텔은 우리나라 ‘대우’에서 건축한 건물로서 주로 외국 손님을 유치하는 최고급 호텔로 이용되는 것 같았다. 음식은 우리나라의 뷔페 음식으로 차려놓고 가수와 무용수들의 노래와 춤으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이튿날 2일째.

연변에는 우리 조선족이 85만 인구인데 이곳 연길에서 만도 30만 명이 되는 많은 교포가 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상가의 간판도 거의가 우리말로 달아놓아 한국에 있는지 중국에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우리는 북한 땅의 회령시가 보이는 전망대를 가기 위해 용정을 지나고 야산을 지나 비포장 도로를 달리던 중 지도에서나 보고 노래에서나 들었던 두만강을 보았다. 이북 실향민들만이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두만강” 노래를 즐겨 부르며 자기 고향을 생각게 하는 그 두만강, 생각보다는 작은 샛강으로서 중국과 북한과의 국경선이었다. 마음대로 건널 수 없는 두만강아! 아는가 모르는가 그대 이름 부르며 마음을 달래는 그 목소리 들리는가. 말없이 흐르는 슬픔의 눈물인 듯,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두만강 건너 큰 산들은 산봉우리만 남고 8부 능선까지는 밭을 일구어 무엇을 심었는지 바둑판 같이 다듬어져 있었다. 그것 하나만 보아도 북한의 식량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북한의 희령시가 보이는 조그마한 동산의 전망대로 올라갔다. 북한으로 건너가는 두만강 콘크리트 다리 위로 이따금씩 왕래하는 트럭과 경비병 몇 명만 보일 뿐, 회령 시내에는 변전소 같이 전봇대만 얼기설기 보이고 왕래하는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아 참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같은 동포가 사는 내 나라인데 마음대로 갈 수가 없으니.... 착잡한 가슴으로 돌아섰다.

오면서 용정의 ‘윤동주 시인’ 이 자랐던 생가에 가서 공적비에 참배하고 나왔다.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억울하게 옥살이하다 죽은 멋진 시인 청년, 그의 시는 읽을 때마다 가슴에서 무언가 꿈틀댄다.

거기서부터는 계속 백두산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일송정이 있는 비암산, 혜란강을 버스에서 바라보면서 갔다. 그때의 일송정은 죽어 없어지고 다시 심었다고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는데, 시장에 가서 과일이나 살까 하고 들어갔다. 이것이 어느 시대인가? 봉탱이진 오이와 주먹만 한 개구리참외와 길쭉한 수박을 광주리에 담아 놓고 파는 풍경이 옛날 50년 전 우리나라의 시골장터 모습 그대로였다. 어린아이들은 백두산 등산로가 그려져 있는 수건을 갖고 졸졸 따라다니며 사생결단으로 덤벼들며 사기를 권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캄캄해진 밤. 마을도 없는지 불빛 하나 없는 울퉁불퉁한 숲 속 길을 한없이 달렸다. 이 길은 큰 나무를 실어 나르는 임도로서 얼마 전에야 겨우 버스가 다닌다 했다.

우리 차 두 대의 불빛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뚫고 8시가 넘어서 6시간 여 만에 송강하 백운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은 새로 지은 산장으로 지난 6월에 오픈해서 아주 깨끗한 호텔이었다.

 

 

광대한 산등에는 야생화 천국으로 천상의 화원

 

다음날 3일째.

백두산의 서쪽 산을 등산하면서 금강 폭포를 보기 위해 버스로 2시간을 달렸다. 큰 비로 인해 땅이 한 길 찍은 되게 갈라져서 차가 빠질까 봐 아슬아슬했다. 결국은 도중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산장의 위치가 해발 1400미터, 이곳은 그 보다 더 높은 산인데도 산봉우리는 하나 없고, 어마어마하게 큰 분지형태로 되어 있는 곳이 군데군데 있으며 광대한 산등에는 나무 하나 없이 푸른 초원에 이름 모를 야생화만이 만발하였다.

금강폭포에 도착하니 수십 미터의 폭포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듯 2층, 3층으로 돌 위에 떨어지면서 하얗게 부서져 내렸다. 아주 우렁찬 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쏟아져 내렸다. 우린 폭포수를 바라보고 물안개 속에서 싸 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은 후 다시 오던 길로 내려와 4시간 30분이 걸린 산행을 마쳤다.

금강 대협곡으로 이동했다. 깊이가 80미터가 되는 협곡 사이에 대리석 같이 매끄러워 보이는 여러 형태의 돌기둥은 신이 빚어낸 작품인 듯했다. 백두산은 천재지변도 어마어마하고 모든 것이 광범위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시 어제 묵었던 백운산장으로 와서 쉬었다.

 

백두산을 향하여!

4일째 새벽 2시.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본다. 다행히 어젯밤에 주룩주룩 내리던 비는 그치고 캄캄한 새벽하늘엔 뿌연 안개가 끼여 온 대지가 촉촉한, 새 봄날 같은 기분이 감돌았다.

간식과 물, 우비 등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3시 30분쯤 51명의 등산 회원들과 버스 두 대로 캄캄한 새벽길을 나섰다. 불빛도 민가도 없는 깊은 산길로 한 시간쯤 가다가 다시 트럭으로 옮겨 타고 덜크덩 덜크덩대며 울툭불툭한 오르막길을 한참 동안 갔다. 그때 날이 훤하게 밝아 오면서 주위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산에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크나큰 민둥산이었고 아주 작은 들풀과 야생화로 끝없는 초원을 이루었다.

5시. 트럭에서 내려 바로 앞에 있는 큰 산등성이를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아주 가파른 오르막길이어서 다리도 아프고 숨이 차서 힘들었지만 각오했던 바 苦盡甘來를 떠올리며 올라갔다. 그렇게 50분쯤 오르니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인 마천루(해발 2691미터), 그곳에 올라서는 순간 바로 눈앞에 천지가 있고 수많은 백두산의 연봉이 쫙 펼쳐져 있었다.

 

 

펼쳐진 백두산과 천지를 보는 순간 너무나도 고요하고 엄숙한 아침의 나라를 보았다. 물은 한 치의 요동도 없고 삥 둘러싸인 백두산은 천지 속에 긴 그림자로 들어가 누워서 꼼짝도 않는 모습이 잠자고 있는 것 같았다. 물과 산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천지는 거울 속을 들여다보듯 선명하고 맑았다. 건너편에 보이는 최고봉인 장군봉과 뾰쪽뾰쪽한 산봉우리는 구름에 가려 살짝살짝 모습을 드러내는데, 아주 기세가 당당하게 보이며 천지를 에워싸고 있는 폼이 남자의 늠름함처럼 듬직해 보였다. 비를 몰고 다니는 짙은 구름도 동녘의 빛을 받으며 백두산 앞에서 춤을 추듯 아름답게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립고 그리웠던 백두산!

지척에 두고도 이렇게 수억 만 리 이국 땅에 와서 바라보게 되다니… 최고봉인 장군봉(2,750m)엔 언제나 가볼까! 북한과 중국의 경계선은 가느다란 철사 줄로 땅에 늘어져 있고 우뚝 세워놓은 나무 기둥에는 ‘장백산 천지, 백두산 천지’라고 빨간 글씨와 파란 글씨로 나란히 쓰여 있었다.

나는 경계선을 넘어 우리 땅을 밟아보며 기뻐했다. 그리고는 몇 발짝을 더 가서 우리나라 백두산에 올라왔다는 감격을 맛보았다.

 

6시. 51명 중 자신 없는 사람 네 명은 왔던 길로 도로 내려가고,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청석봉에 도착해서 등정식을 가졌다. 우리의 백두산을 바라보며 애국가를 부르고, 만세를 부르고 나니 애국자나 된 듯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천지 옆 난간에서 싸 가지고 온 아침 도시락을 먹고 서둘러 멀리 보이는 백운봉(2691미터)을 향하여 출발하려 하던 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천지 속에 둥그런 보름달이 떠 있어 해가 비췄나 하고 하늘을 보니 짙은 구름으로 덮여 빛이 조금도 새어 나오는 곳이 없었다. 아무리 하늘을 보고 천지를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신기한 그때의 일을 지금도 무슨 이치인지 풀지 못했다. 가이드들의 말에 의하면 해마다 8월이면 사고가 나거나 이상한 일이 일어났지만 이런 희한한 현상은 12년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시커멓고 푸석한 돌과 들풀을 밟으며, 위험한 내리막길을 2시간이나 걸려 내려왔다.

온 산 전체에 들풀과 야생화가 깊이가 한자나 되게 쌓여있어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푹신푹신했다. 바위 뒤에 숨어 홀로 피어 있는 분홍색의 산 양귀비꽃, 사연이 있는 가냘픈 여인같이 애처롭게 보였다. 연노랑색 만병초, 미색으로 핀 게 감채 꽃, 담자리 꽃, 엉겅퀴꽃 등은 피었다 지는 상태이고 그밖에 이름 모를 꽃들이 꽃방석을 이루어 마치 하늘나라를 걷는 듯 황홀했다.

 

 

천지 쪽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의 맑은 물에 손을 적시면서 다시 2시간 30분 정도 올라갔다. 오르막길에서 고산증에 약한 나는 그 증세가 내 몸에 온 것을 느꼈다. 졸리고 귀가 시리고 힘이 들었다. 그러나 말레시아 코타 키나발루 산에서 고산증에 시달려 고생했던 때를 생각하며 내 한계를 가름할 수 있어 마음에 여유까지 가졌다.

 

백운봉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점심을 빗물에 말아먹고 출발하려던 때 또 다른 신기한 풍경을 보았다. 하늘에만 떠있던 무지개가 아래서 밀려오는 구름 위에 쌍무지개로 떠있다. 바로 손에 잡힐 듯, 몇 미터 앞에 선명하게 있어 모두들 환

호성을 쳤다. 중국인들은 무지개를 보면 3년은 재수가 좋다면서 무지개를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정말 우리도 축복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없었다. 천지의 가장자리는 용암이 분출된 모습이 그대로 하늘까지 뻗어 있고 깎아지른 절벽은 푸석푸석한 흙 같지만 보는 것과는 달리 매우 단단해서 무너지지 않는 가보다.

 

마지막 천지 옆의 넓은 초원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심술궂은 비가 또 내리기 시작하였다.

천지 아래의 산등에는 얼음덩이가 아직 녹지 않아 거북이 등같이 바둑판을 이루었고, 산 가운데의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옥벽폭포는 너무도 아름다워 발길과 눈길을 멈추게 하였다. 천지 아래에서부터 흘러내리는 하얀 물줄기는 마치 하얀 옥양목 필을 깔아놓은 듯이 희고 아름다웠다. 비는 점점 많이 내려 옷과 등산화가 흠뻑 젖었다. 일행 47명 전원이 장백폭포가 있는 쪽으로 하산해서 10시간이나 걸린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유황온천의 뜨거운 물에 피로를 풀었다.

 

다음날,

68미터의 낙폭이 있는 장백폭포를 보고 또는 그 뒤의 웅장한 산을 보고 어마어마함에 또 놀랐다. 낙반사고로 인해 출입이 금지된 산을 올려다보니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금방 허물어질 것 같은 무시무시하게 큰 산이었다.

백두산! 누구든 한 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2600미터 급의 외륜봉이 16개나 되는 그 수많은 봉우리와 그 많은 산을 받들고 있는 천지, 곳곳에 수십만 평이나 되는 분지와 야생화 천국, 그 속에서 단 며칠이라도 기거했다는 것,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로 생각한다.

건강한 몸을 주셔서 이곳에 올 수 있게 하신 하나님, 부모님과 나를 항상 배려해주는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절로 가슴속에서 우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