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백두대간산행기

나는 백두대간 종주를 이렇게 했다.上

산의향기(백경화) 2013. 6. 20. 22:24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며  (2004년 1월 29일. 날씨 맑음 인원39 명)

 

 

 

등산을 시작한지 13년, 일주일에 하루씩 13년을 꾸준히 다녔으니 횟수로는 700회를 넘게 다니며 전국에 있는 알려진 산과 백두대간 길도 많이 밟아 보았다. 그래서 올해는 무엇인가 목표를 세워서 거기에 도전하고 탐구하며 터득해서 지난날보다는 더욱 보람되고 가치가 있는 산행이 되어보자, 생각한 끝에 백두대간종주산행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이 먹은 여자들로는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동안의 산행 경험으로 보나 팀원들의 협동심을 보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언젠가는 나도 하리라 꿈꾸며 나는 수개월 전부터 백두대간 지도책을 사서 보며 나름대로 연구하고 소망해 왔던 터라 결정하고 보니 마음이 설레었다.

 

오늘이 2004년 음력으로 정월 초여드레, 설날 지나고 첫 번째 목요일이다. 드디어 내가 소망하며 꿈꾸어오던 백두대간종주산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아침 7시에 대전을 출발해서 지리산 성삼재에 도착하니 10시 30분, 지리산에 눈이 많이 온 관계로 뱀사골로 차가 올라가지 못하고 천은사로 돌아오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차가 통제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지리산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했더니 뱀사골은 통제되었지만 천은사 길은 갈 수 있다고 했다. 이곳으로라도 올라 갈 수 있다는 것만도 다행이다 싶어, 돌고 돌아 천은사 매표소로 왔다.

뱀사골로 가면 입장료 1,600원이면 되는데 이곳은 3,200원. 39명이 단체입장료 3000원씩을 내려니 너무 거금이다. 한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마음에 30명분만 끊어달라고 사정사정하니 35명분을 끊어 주겠다한다. 신도증이 해당되는가 싶어 물어보니 된다고 해서 재빨리 4장을 걷어다 주었더니 산에 가는 사람들이 신도증이 뭐 필요하냐는 말을 했다. 그러면 절에 들어가지 않으니 당연히 1,600원만 받아야지 않느냐 하고 반문하니 무조건 귀찮다는 태도를 보이며 35명 빨리 끊고 들어가라는 대답이었다. 그러면서 또 성삼재까지 갈 수 없고 시암재까지만 가란다. 실망이다. 고리봉에서 시산제 지낼 떡과 과일 등등.. 무거운 짐을 지고 어떻게 저 미끄러운 길을 올라가며 시간은 얼마나 소비할까. 전화할 때 분명히 천은사로 가면 성삼재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다고 했는데,

비싼 입장료 내고 종점까지도 못 간다하니 괜히 손해보는 것 같은 찜찜함이 있지만 오늘이 백두대간 시작하는 첫날이고 시산제 지내는 날이니 싸우지 말자. 달라는 대로 다 주고 우린 올라갔다. 그러나 시암재에서 성삼재까지 올라갈 생각을 하니 꿈만 같다. 시암재에 올라간 윤기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우리의 처지를 아는지라 그냥 직진했다. 응달이라서 빙판 길로 위험한 길을 조심조심, 아주 노련한 운전 솜씨로 성삼재까지 올라갔다. 이젠 됐구나. 오늘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입장료가 아까운 생각 금새 잊게 되었다.

예정대로 우린 백두대간 산행의 첫발을 옮기게 되었다. 오늘 코스는 성삼재에서 고리봉(시산재)- 만복대-정령치-고리봉-고기리로 하산할 계획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었으나 종주 하려면 2박 3일은 걸려야하니 따뜻한 5월쯤에 하기로 하고 여기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백두대간종주➀  (2004.1.29 맑음)

 

 

 

스켄사진

 

 

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고리봉-고기리 (7시간)

성삼재 주차장에서 찻길로 나와 길을 건너 울타리를 따라 조금 내려오다가 산으로 들어선다. 한 5분쯤 가면 만복대 6km라는 푯말이 있어 잘 진입했다는 안정감을 준다.

시산제를 지내려고 갖고 온 음식을 모두들 나누어 배낭에 넣고는 첫 번째 정상 고리봉을 향해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대전에는 없던 눈이 이곳에는 하얗게 쌓였다. 마치 우리의 대장정 길을 위해 축복이라도 해 주는 듯, 따뜻한 햇볕에 바람 한 점 없는 날씨로 산행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저벅저벅 눈길을 걸으며, 40여분만에 고리봉에 도착하여 시산제를 지낸다. 각자 회원들이 준비해온 음식을 모두 차려놓으니 푸짐하다. 제일먼저 제주인 내가 술잔을 받아 양옆으로 가운데로 뿌리고 잔을 놓고 절을 한 다음, 첫 잔을 받아 다시 절을 하고는 축문을 읽었다. 다음은 호산나 팀장, 총무, 회원들, 차례로 잔을 올렸다. 처음으로 지냈는데 우리가 백두대간을 시작하는 날, 시작하는 의미와 협동하는 의미가 되어 좋은 것 같았다. 차분하게 끝내고 음식을 골고루 나눠 먹은 뒤 기쁜 마음으로 만복대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미끄러운 눈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고, 가깝게 보였던 만복대는 자꾸만 멀리 달아나는 것처럼 더 멀어져만 갔다. 오르락 내리락, 몇 봉을 넘고 가파른 억새밭길을 오르니 전망이 좋았다. 우리가 시작했던 성삼재와 노고단은 우리가 밟고 왔던 산봉우리 뒤로 멀리 밀려나가고 앞에는 넓은 산등성이 위에 만복대의 돌탑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이제 저곳만 올라가면 숨찰 일은 없다, 생각하니 어려운 산행은 끝났다 싶었다. 한번만 올라치면 되련만 도저히 힘이 들어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올라가려니 더 힘들었다. 그럴 줄 알면서도 먹었으니 자신들이 감수해야 된다는 것쯤 알고 있기에 헉헉대며 올라갔다.

드디어 만복대 정상에 섰다. 천왕봉으로 연결된 능선이 다 보이고 노고단의 송신탑도 아련하게 보였다. 날씨가 좋아 먼곳까지 잘 보였다. 잠시 쉬면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여기서부터 정령치까지는 눈이 많이 쌓여 허벅지까지 빠지는 길이 이어졌다. 그러나 경사가 그다지 심하지는 않아서 아예 질펀히 앉아 미끄럼을 타면서 내려왔다. 이보다 좋은 눈썰매장이 없을 정도로 즐겁게 내려왔다.

정령치에 도착하니 우리뿐이 없다. 차를 통제시켜 왕래하는 차가 전혀 없으니 사람이 있겠는가.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등산인들 아니면 이곳에 올라 올 수가 없다. 이젠 우리도 고리봉으로 올라가 하산하는 길뿐이 없다. 이곳에서도 정상이 저곳이다 싶어 올라가면 또 산봉우리가 있고, 또 숨차게 올라가면 또 앞에 산이 있고, 가까운 것 같지만 세 번째 올라가야만 고리봉 정상이다.

정상에서면 파란색 산불감시소가 있고 전망이 좋다. 세걸산, 바래봉으로 가는 능선길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고 봄이면 빨간색으로 치장하고 사람들을 유혹하는 바래봉 평전이 오늘은 하얀 눈 속에서 잠을 자는 듯 고요하게 보였다. 백두대간은 여기서 잠시 왼쪽으로 꺾이면서 고기리로 내려선다.

 

나는 여기서부터는 초행길이다. 그러나 길이 뚜렷하게 나있어 그다지 염려는 안 했지만 지도를 보면 독도 위험길이 두 군데나 있어 눈길로 험하리라 예측을 했다. 모두 아이젠 착용을 하고 급경사 길로 내려가는데 위험했다. 울툭불툭 큰돌이 퉁기쳐 나와서 미끄럼을 탈수도 없는데다가 붙잡을 곳도 만만치가 않아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미끄럼을 타다가 딩구는 바람에 옷 속으로 또는 등산화 속으로 들어온 눈은 다 녹아서 옷이 젖고 양말이 젖었다. 등산화 속에서는 발짝을 옮길 때마다 찔걱찔걱 물소리가 났다. 그래도 쉬지 않고 부지런한 발놀림에 춥지 않고 따뜻하기까지 했다.

25분정도 내려오니 울타리를 지나게 되고 큰 묘지를 지나게되고, 양쪽으로 소나무 숲 속 길이 시작되었다. 쭉 쭉 뻗은 왕 소나가 빽빽하게 많아 이렇게 많은 솔밭 처음 보았다. 솔밭 길을 20분쯤 내려오니 고리봉 2킬로, 고개삼거리 1킬로라는 이정표를 만났다. 이제 거의 다 왔구나 했는데 거기서도 20분을 내려와서야 고기리에 도착되었다. 다리 아픈 회원이 생겨 조금 늦었다.

백두대간 첫날에 고생들이 많았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대전07시출발-지리산성삼재1,102m(10:30분)출발-고리봉1,248m(11:10)도착(시산제)-만복대1,433.4m(14:00)도착-정령치(15:30분)-고리봉1304m(16:37분)-고기리(17:30분)도착. * 도착시간은 제일 끝 사람 기준으로 표시함

 

 

백두대간종주➁ (2004.2.5. 맑음 35명)

 

 

고기리-가재마을-수정봉(804.7미터)-여원재(4시간)

 

어젯밤에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에 폭설이 내렸다.

집집마다 가족들이 걱정하는 마음을 뿌리치고 우린 지리산 자락의 수정봉을 향하여 출발했다. 눈오는 날은 언제나 길이 미끄러워 걱정이 되지만 오늘같이 함박눈이 내린 날은 눈꽃을 보겠다는 기대에 더욱 마음 설레기도 하는 날이다.

아침 7시 30분, 어젯밤부터 내린 눈은 밤새도록 차가 다녀서 녹았으나 새벽에 기온이 떨어져 녹았던 눈이 얼어붙어 빙판길이 되었다. 조금은 긴장이 되었지만 이런 날이 어디 오늘뿐이던가. 오늘은 윤기사도 사정이 있어 나오지 못하고 다른 차를 보내왔다. 대형버스니 기사만 믿는 수밖에. 대진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빙판 길을 기사는 조심하면서 천천히 달렸다. 창 밖은 온 세상이 하얗다. 그 위에 따뜻한 햇살이 비추니 포근하게 보인다. 덕유산이 하얀 雪山으로 장엄하게 펼쳐있다. 마치 히말라야의 산처럼 높고도 웅장하게 보였다.

도착지까지 가는 3시간 동안 나는 걱정이 되어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앞만 지켜보고 갔다. 다행히 차가 갈 수 있어 산행을 하게되어 마음이 놓았다.

 

고촌리로 가서 도로를 타고 가다가 운천 초등학교 표지판을 보고 가재마을로 들어갔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비닐 하우스를 지나 동네 가운데로 들어가니 샘이 나왔다. 노치샘이라는 푯말을 세워놓고 노치샘 해발 550미터, 여원재 방향 등산로 표시를 해 세워 놓았다. 샘 뒤에 있는 나무에는 백두대간 리본이 울긋불긋하게 주절주절 매달려 있었다. 샘 뒤로 난 좁은 길로 들어서니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조금 올라서면 큰 소나무가 몇 그루 있고 그 그늘 아래로 산신제를 지내는 커다란 상석도 있다. 과연 백두대간길이 있는 동네는 다르구나 싶었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오솔길이 시작된다. 소나무 아래서 자라고 있는 철쭉, 진달래가 백색의 눈옷을 입어 산호초같이 아름답다. 태백산에서만 보았던 철쭉의 설화를 여기서 또 보았다. 신비한 풍경에 감탄하느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걷다보니 수정봉을 놓쳤다. 지나고 나서야 뾰족한 산봉우리가 정상인 것을 알았다. 힘들여 올라가 보니 나무 가지에 리본이 많이 붙어서 의아해 했던 곳이었다. 그 정상에서 내리막길로 내려오다가 공터를 만났다. 눈이 많이 쌓여 있어 헬기장 인지 모를 눈 위에서 점심을 먹었다.

내려오면서 눈꽃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기에 담고, 한참을 내려오다 임도를 만났다. 왼쪽으로는 내려가는 길처럼 보였고 오른쪽으론 넓은 공터로 무슨 공사를 하려는지 터를 닦아 놓은 것 같았다.

길을 건너 다시 산봉을 오르고 또 내려가고, 또 숨차게 오르고, 몇 차례나 오르락내리락 했다.700고지가 넘을 듯한 끝봉에서는 내리막길에서 험한 곳도 있었다.

잔솔가지가 얼굴을 치는 좁은 길을 빠져나오니 넓은 길이 훤하게 나왔다. 넓은 논밭사이로 차가 다니는 길도 보였다. 여원재에 다 왔구나싶어 차를 오라 전화해 놓고 넓은 임도로 내려서서 다시 작은 산등을 타고 가다보니 큰 도로가 나왔다. 승강장으로 가서 여원재의 간판을 넣고 기념찰영을 하려고 사진 작가인 이진숙씨한테 부탁하니, “회장님! 필름이 없네요?!” ‘아뿔사’ 필름도 없는 빈 카매라를 갖고 산에서 찍어댔으니. 기가 막혔다. 그 아름다운 설화의 풍경을 놓쳐 버렸으니 어찌할까나. 아침에 서둘러 나오느라 확인도 안 했을 뿐더러 항상 필름을 넣어 논 상태였기에 생각지도 안 했었다. 나는 아찔했다. 지난번 첫 번째 산행 때 이런 실수를 했다면 어떠 했을까하고, 이런 일을 난생 처음으로 겪었다.

3시간 거리의 산이라 생각하고 쉽게 생각했는데 대 여섯 봉을 넘고 보니 그렇게 만만치만은 안구나 생각되었다.

주촌리육모정(11:00)-수정봉(12:50)-공터(점심)(13:00)-여원재(15:00)

 

 

 

백두대간종주➂ (2004.2.5.맑음.35명)

 

여원재(해발470m)-고남산(846.5m)-매요마을---등산시간 6시간

 

88고속도로를 가다가 지리산IC로 나와, 남원시 인월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운봉읍으로 간다. 운봉에서 우회전하여 몇 분 정도 가다보면 여원재라는 푯말이 도로 가에 세워있다. 내려서 몇 발짝 가서 우측 산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길목의 나무에 백두대간 리본들이 잔뜩 매달려있어 그 길로 들어서면 된다.

오늘은 우리 대전 YWCA의 등산 진달래팀과 상록수팀, 이렇게 세 팀이 모여 가게 되었다. 70여명이 한 줄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산길로 들어섰다. 길이 없다고 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었는데 막상 진입하고 나니 어려운 일이 솔솔 풀려가듯이 길이 잘 이어져 있었다. 임도를 만나고, 밭을 만나고 했지만 나무에 리본이 매달려있는 길을 찾아가니 헤매지 않고 길을 잘 갈 수가 있었다. 2월의 날씨답지 않게 따뜻하여 동네 야산의 소나무 숲 속 길을 걷는 맛이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또 심심찮게 밧줄도 타는 암릉 구간도 있어 재미있었었다.

2시간 20분만에 고남산 정상에 도착했다. 뾰족한 암봉에 철탑이 세워있고 산불 감시소가 있다. 바로 앞으로는 통신 안테나인 중계탑이 있으며 산불 감시원들 두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감시원들은 우릴 보고, 올라오는 것을 쭉 지켜보았다고 말하며 우리가 갈 길을 손짓으로 알려 주었다. 바로 아래에 넓은 공터가 있어 모두 만나서 한자리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북쪽으론 철쭉꽃으로 유명한 바래봉이 바로 눈앞에 보이며 그 위로 줄기차게 뻗은 지리산 서북능선이 시원스레 보였다. 오른쪽으로는 雲海가 끼어 山峰들이 多島海를 보는 듯, 아름답기만 하다. 이 공터에서 왼쪽 길로 내려가니 중계탑이 나오고 넓은 임도를 만나게된다. 임도를 건너 산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임도를 만나게되고, 눈으로 보아서는 1시간쯤이면 끝날 것 같았는데 2시간을 넘어서야 매요 마을에 도착되었다. 매요 마을은 따뜻하고 아늑한 마을로 보였다. 마을 중앙에 노인들의 쉼터로 새로 지은 유성각이 있고, 마을회관도 새로 지어 놓은 듯 깨끗하게 보였다. 버스도 몇 대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그 동리 아저씨 한 분은 이 마을이 참 좋은 마을이라고 자랑하며 정부에서 좀 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동네의 뒷동산 너머로는 장수군이고 여기는 남원이라 하며 백제와 신라의 경계선이면서 역사가 깃 든 곳이라고 자랑이 대단했다. . 여원재(09:10)-고남산(11:30)점심-매요마을(15:00) 6시간

 

 

 

백두대간종주➃ (2004.3.4.맑음 32명)

 

매요마을(09:10)- 유치재(09:30)-사치재(10:20)-697봉(10:40)- 새맥이재(11:30)- 큰솔밭속묘지에서 점심(12:05)-아막성터(13:53)-복성이재(14:20)-치재(14:50)-묘지(15:30)

 

오늘은 지도상으로는 나타나지 않은 칠팔백 미터가 다되는 대여섯 개의 山峰을 넘고 재를 넘으며 무려 7시간이나 걸었다.

대전에서 7시 출발 지난번과 같이 지리산 나들목으로 나와 운봉읍 인월리 매요마을로 들어갔다. 회관 앞에서 교회쪽으로 가서 포장도로로 올라가다가 숲으로 들어갔다. 금새 논길로 나가게 되고 공장인 듯한 건물과 차가 다니는 2차선 도로를 만나게된다.

소나무가 빽빽한 산을 보며 진입로를 찾기 위해 좌측도로로 20여미터 가다보니 길이 없었다. 아니다 싶어 뒤돌아와 몇 발자국 돌고 보니 바로 길가에 ‘백두대간, 유치재 해발420m. 복성이재9.6km 라는 표지목이 자랑스럽게 떡 버티고 있었다.

나무 하나에 울긋불긋 표시기리본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더욱 반가웠다. 이제 이 산 속으로 들어가서 하루종일 백두대간종주 표시기를 찾아가면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 오늘의 코스를 마친 기분이다. 그리고 우리보다 1시간 늦게 출발한 진달래팀이 뒤에 따라 온다고 생각하니 든든한 기분도 들고 날씨도 쾌청하고 마음이 즐겁다.

전망이 보이지 않는 소나무 숲속을 걸으며 묘를 만나고, 618봉을 지나고, 내리막길로 내려오니 88고속도로가 눈앞에 보이며 ‘사치재 해발500m’ 의 나무표지목이 유치재거와 똑같은 것으로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지도에는 육교가 있다고 알고 왔는데 육교는 보이지 않아 혹시 잘못 왔는가 했다. 그러나 길 건너 쪽에 산길이 보이고 빨간 리본도 매달려있어 안심을 하고는 어떻게 건너갈까 두리번거리다가 지하도를 발견했다.

길을 건너 가파른 오름 길로 20분 올라가니 697봉에 널따란 헬기장이 있었다. 10여전 전에 엄청난 산불로 온 산은 허허벌판이다. 다 타버린 잔해가 아직도 널부러져 있어 작은 불씨 하나의 부주의로 이렇게 큰 피해를 입었다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정상의 주변은 억새와 싸리나무의 천국으로 민둥산이니 전망은 아주 좋았다. 지리산은 물론이고 지리산 휴게소가 산 위에서 보니 산 속의 별장처럼 한적해 보이고 88고속도로가 하얗게 굽이굽이 뻗쳐 있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지난번에 갔던 고남산이 아주 높게 보였으며 중개철탑이 있어 더 뾰족하게 보여 인상적이었다.

여기서부터 왼쪽으론 절벽에 가까운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산봉 하나 넘어 내려가니 마을을 왕래하는 길이 나왔다. 누가 두꺼운 종이에다 ‘새맥이재’ 라고 써서 작은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아 여기가 새맥이재란 것을 알고 지도를 꺼내 보고는 위치를 확인했다.

큰 솔밭이 시작되면서 다시 오르막길이다. 또 하나의 헬기장을 지나게되고 길가에 우뚝 서있는 입석바위가 앞으로 쓰러질 듯 서있다. 억새와 철쭉이 길을 막는다. 781봉은 억새로 우거지고 서 있을 곳도 없어 곧장 내려왔다. 그런데 내려오다가 앞에 간 회원들이 앞만 보고 직진하다가 대간 길을 벗어나 하산 할 뻔했다. 뒤에 가는 회원들은 눈 위에 발자국만 보고 따라갔으니 의심치 않았다. 맨 뒤에 선 나는 조금 내려 가다보니 방향이 이게 아니다 싶어 지도를 꺼내어 보니 ‘길주위’가 있었다. 내려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뒤돌아와 길을 찾아보니 왼쪽으로 백두대간 표지기가 나무에 매달려있는 길이 있지 않은가. 나는 갈림길마다 리본이 붙어있어 잘 찾아가리라 했는데... 앞만 보고 걷다가는 한 발짝만 비켜서면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하고 내 자신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돌로 쌓아 놓은 아막성터에서 잠시 쉬고는 거기에서 27분만에 복성이재로 내려섰다. 2차선 포장도로가 말끔하게 정리된 것으로 보아 신설된 도로 같다.

여기서 오늘 산행을 마친다면 차가 이곳까지 올 수 있으니 쉬울 텐데 아직 2시 20분이다. 앞산을 넘어 치재까지 갈 결심으로 길을 건너 솔밭 길로 들어섰다. 왼쪽으로는 철망울타리를 해 놓았는데 이곳도 어찌된 일인지 민둥산이었다. 이제는 오늘의 한계에 도달했는지 올라가는데 회원들 몇몇이 힘들어한다.

산정에 오르니 저멀리 봉화산이 보이고 우리가 내려갈 치재마을이 보였다.

눈이 녹아서 질퍽한 길을 내려가다 보니 철쭉나무가 무지개수다.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고만고만한게 잘 다듬어 놓은 관상수다. 여기가 봉화산의 철쭉재 하는 곳인가? 온 산에 꽃이 다 핀다면 바래봉 못지 않겠구나. 나는 빨간 불덩이 같이 핀 산을 상상하면서 내려왔다.

치재에 내려서니 2시 50분. 앞산을 바라보니 마을 뒷산의 야산이었다. 조금만 더 걷다가 길이 있으면 하산하자. 욕심을 더 내 보았다. 그때부터 40분을 걸었다. 그런데 마을이 점점 멀어지고 하산길이 나오지 않았다. 올 때는 치재로 하산하리라 철저하게 계획하고 왔는데, 아 오늘 내가 실수했다. 조금 이르더라도 아까 끝냈어야 하는데...

아무튼 이제 하산길을 찾아야한다. 나는 앞산을 오르기 전에 리본이 매달린 하산길이 있었지만 눈이 쌓여서 분명치가 않아, 다른 길을 찾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가파른 앞산을 올라갔다. 올라가 보니 넓은 공터에 홍성장공인성 지묘가 있고 잘 다듬어진 소나무에는 리본이 잔뜩 매달려 있는 산머루였다. 그러나 마을은 멀어지고 하산길이 없었다.

오르기 직전 보아놓았던 길로 하산하기 위해 정지하라고 소리치고는 뒤돌아 그 길을 찾았다. 리본이 매달려 있어 길이겠지 하고는 눈길로 접어들었다. 백 미터도 못 가서 넓은 임도가 나왔다. 내려와 보니 십여 년 전에 봉화산 왔을 때 왔던 길이었다. 이제야 안심을 하고는 임도로 내려오다가 과수원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갑자기 길이 뚝 끊겼다. 포크레인으로 새로운 길을 만드느라 있던 길도 막아지고 공사 중이었다. 그러나 나무가 없는 풀밭이니 그냥 내려갈 수밖에, 돼지목장으로 가게 되었다.

목장 주인의 말을 들어보니 봉화산을 올라갈 때 이곳으로 올라가면 제일 빠르다고 하니 잘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그때가 4시 15분,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내려와 다행이었다.

   

 

 

백두대간종주➄2004,3.18.맑음.39명

 

치재마을(09:05)-묘(10:00)-봉화산919.8m(10:50)-870봉묘마당(11:17)점심-출발(11:55)-광대치(13:20)-산사태(14:23)-중재650m:(15:00)-중기마을(15:15분)

 

봉화산하면 불난 산, 철쭉산, 억새산으로 생각이 떠오를 듯 민둥산이다. 그러나 정상에서 광대치까지의 1시간에 걸쳐 날카로운 능선도 잊을 수 없다.

지난번에 내려왔던 성리마을에 도착하니 9시 5분. 돼지목장에서 과수원으로 올라가 홍성장공묘지에 올라서니 10시가 되었다. 지난번에 욕심을 내어 이곳까지 걸었지만 시간이 없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치재에서 끝내고 치재에서 시작하면 편하다. 그러나 얻은 점도 있었다. 마을 안의 산길과 위치를 많이 알 수가 있어 잘 된 일이라 생각했다.

눈앞에 보이는 산이 정상인줄 알고 올라갔으나 40분을 더 올라가서야 정상이었다.

유난히도 양쪽으로 임도가 많은 산이다. 왼쪽으론 정상 부근까지 산을 다 깍아 임도를 만들어놓아 산 모양이 이채롭다. 내내 가깝게 보였던 지리산도 오늘은 저 멀리 보인다. 계속 우뚝 솟아 보였던 고남산도 멀리 갔다. 이젠 제법 많이 걸어온 모양이다.

광야를 달리는 무법자처럼 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자연의 억새밭을 뛰어간다. 능선을 가르는 임도를 지나고 양지바른 묘 마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11시 55분에 출발.

이제부터는 전혀 다른 길이 이어진다. 키를 넘는 싸리나무가 얼굴을 때리기도 하고 옷을 붙잡는다. 능선길이 시작되면서 부터는 싸리대와 철쭉은 물론이고 큰 나무까지 베어내 전망이 좋고 시원해서 좋았다. 등산인 들이 많이 다니니까 아예 길을 만들어준 것 같다.

1시간 20여분을 날카로운 능선길에 돌 더미와 암봉도 있는 길을 걷다가 험로를 지나 내려서니 억새밭으로 널직한 광대치다. 이곳에서 대상동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있다.

직진하여 숲속으로 들어가 또 오른다. 능선으로 가다가 산허리를 돌면서 좁은 길로 이어진다. 이런 길도 있는가 싶을 정도로 좁은, 겨우 몸만 나갈수 있는 길로 가다가 이제는 미끄러운 급경사로 내려갔다. 내려와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눈앞에 아찔한 산사태를 보았다. 제법 큰 산사태다. 이 육중한 산이 무너져 내릴 때 땅과 하늘이 얼마나 진동했을까. 가슴이 오싹했다.

시원한 솔밭 길로 내려오니 중치라는 표지목이 나를 반겼다. 광대치에서 중재까지 1시간으로 표기되었지만 우리는 쉬지 않고 걸었으나 1시간 40분이나 걸렸다.

 

 

백두대간종주➅2004.4.29. 맑음 37명

 

중재~백운산-영취산-무령고개(09:10-14:30)

그동안, 봄 정기 산불기간으로 대간 산행을 잊지 못했는데 비가 온 후, 오늘에야 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진달래꽃은 이미 피고 지고

일찍 핀 연분홍 철축꽃이 화사하게 우릴 반겨준다.

어젯밤 물먹은 연록색 이파리는 기분이 좋은 듯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며 미소짓는다.

삐리삐리 삐리리

입성은 초라해도 목소리만은 이미자같이 아름다운

이름 모를 작은 새야

너무 많이 부르다가 목소리 다칠라

너무 많이 부르다가 나를 울릴라

 

지난번 중재고개에서 내려올 때는 쉽게 내려왔는데 오늘 그 길을 다시 오르는데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백운산 영취산방향의 화살표가 붙은 숲속 길로 들어서면 바로 큰 느티나무가 있다. 이젠 나무에도 새싹이 돋아나 제법 나풀거리며 왠만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땅에는 나물들이 우리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그러나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유혹을 뿌리치고 전진했다. 전망도 하나도 보이지 않는 동네 야산 같은 산등을 타고 한참을 가니 숲속에 집이 몇 채 보였다. 아마 그곳이 중고개재의 목장인 듯 싶다. 왼쪽으로는 덩치가 큰 산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이 주위에 저렇게 큰산이 대체 무슨 산일까? 지도를 보니 오늘 우리가 영취산까지 일찍 도착되면 장안산까지 간다는 그 산이다. 굉장이 가깝고도 높게 보였다. 무령고개에서 내려오는 넓은 길이 보였다. 이 고개만 올라서면 되리라 생각하고 올라서니 또 오르막길이다. 힘들다고는 하나 짧은 코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너무 힘이 든다. 숨이 턱에 밭친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무룡고개로 뻗은 산줄기는 길어졌다. 장안산은 뒤도 멀어져갔다. 이제 저 장안산 올라갈 마음도 차츰 멀어져만 갔다.

 

3시간만에 백운산 정상에 도착했다. 이제야 가슴이 탁 트이며 전망이 보인다. 제법 넓은 공터에 네모난 지도판을 세워놓고 표지목이 세워져있다. 눈을 들어 멀리 전망을 보니 하늘과 맏 닿은 웅장한 산이 장엄하게 펼쳐있다. 물론 지리산이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한눈으로 보였다. 삥둘러 세상 천지가 다 보여 가슴속까지 후련했다.

점심을 먹고 1시에 출발했다. 왼쪽으로 90도 각도의 꺾인 길로 시작되었다.

나뭇잎이 얼굴을 찔러 보니 어느새 山竹길을 걷고 있었다. 나보다 키가 훨씬 큰 山竹은 얼굴을 치기도 하고 가방을 잡기도 했다. 이런 길이 계속되니 짜증이 났다. 1,066봉에 올라서면 제법 넓은 공터다. 회원들은 지름길로 내려가고 나 혼자 공터에 올라 전망을 살피다가 늦게 내려갔다. 회원 몇몇이 모여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회원중 한사람이 돌을 잘못 밟아서 앞으로 둥글며 코가 깨진 것이다. 상태가 심해서 빨리 병원으로 갈 처지였다. 다행히도 영취산 오르기 직전이라서 차가 기다리는 무령고개가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몇몇 회원과 지름길로 보내고 나는 뛰다시피 오르막길을 단번에 올라 영취산 정상에 섰다. 백두대간 길은 직진으로 뚜렷하게 나 있었다. 영취산의 표지목과 간단한 지도도 세워져있다.

자세한 것은 다음에 시작할 때 보기로 하고 빨리 내려갔다. 무령고개는 2차선 도로로 장수쪽으로만 포장되어있고 주자장과 휴게소도 있다.

다친 회원을 빨리 병원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곧장 장수읍내로 와서 치료하고 왔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회원들한테 등산일일보험을 들고 다니자고 말했더니 하필 오늘 다쳐서 괜히 입방아 찧은 것은 아닌지, 앞으로 이런 일이 두 번 다시없기만을 빌고 또 빌 뿐이다.

 

 

 

백두대간 종주➆ 2004.5.6.맑음.38명

 

영취산에서 육십령까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7시에 출발해서 9시 못되어 무룡고개에 도착했다. 언덕바지를 올라 영취산에 올라가는데는 두어 번 숨을 몰아 내쉬어야 오를 수 있는 급경사길이다. 20여분 올라가 영취산 정상의 표지판에 있는, 깃대봉을 향하여 대간 길은 시작되었다. 불가 3.4년 전 만해도 길이 희미해 길을 잃고 헤매다 다시 찾는 어려움이 있었다는 백두대간종주기를 읽고 은근히 걱정이 되었었는데 지금은 길이 뚜렷하게 나있다. 그만큼 종주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저절로 다져진 이유도 있지만 군 산림청에서 엉뚱한 길로 들어서 산을 훼손시키며 고생할까봐 차라리 길을 내주는 것 같다. 산죽 밭이나 잡목으로 무성하다는 길은 길 양쪽으로 베어내 다니기가 수월했다. 오늘도 아저씨 아주머니 몇 분이 돌을 날라 길을 고르며 편안한 등산로를 만들고 있었다. 땀흘리며 일하는 분들 앞으로 배낭 메고 지나오는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의 산은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비가 온 끝이라서 촉촉한 대지 위에 연녹색 이파리와 연분홍 철쭉꽃이 싱그러움을 더해주며 은은한 풀잎향기는 온몸을 마비시킨다. 1,000미터기 채 못되는 능선으로 높은 산인데도 동네 야산을 산책하는 느낌으로 몸과 마음이 가볍다. 그러기를 50분 정도 이어지다가 숨차게 올라선 곳이 전망이 퍽 좋은 첫 번째 암봉이다.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은 어느덧 녹색 옷으로 치장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폭을 연상케 했다. 짧은 암릉으로 10분 정도 지나고 또 암봉에 섰다. 이곳 역시 전망이 좋다.

이 후로는 한참을 잊어버리고 걷는다. 어디쯤 가고있는지도 모르고 앞만 보고 걸었다. 사거리로 보이는 길에 이정표가 있었는지 목이 잘린 채 말뚝만 서있고, 왼쪽은 논개 생가이며 오른쪽은 경남 옥산리 라고 쓴 나무판이 땅바닥에 놓여 있었다. 거기에서 10여분 올라가면 전망이 탁 트인 세 번째 암봉에(11시) 서게된다. (지도에 표시가 없는 이름 없는 산봉을 나는 첫 번째 두 번째로 표시했다.)

30여분 오르락내리락 걷다보면 숲 속에 북바위 라는 표지목이 있다. 육십령6km 영취산7km 라고 쓴 것을 보니 이젠 어느 지점에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되었다. 지도를 보니 민령에 가려면 더 가야 될 것 같다. 북바위에 올라서면 장계 쪽의 풍경이 보이고 앞으로는 오늘 우리가 걸어갈 능선이 꿈틀대는 용의 형상처럼 길게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숲이 낮아지면서 우리가 버스로 올라온 논개 생가 쪽의 의암호수가 푸른 숲 속에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산죽 길이 시작되며 갈수록 키가 커서 터널에 들어선 듯 한 길을 걸었다.

12시. 넓은 억새 밭과 소나무 숲이 있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여기가 민령 인 듯 싶다. 뒤따라오던 진달래, 상록수 팀 모두 만나 점심식사 후 같이 출발했다.

억새 밭을 지나 다시 오르고 30분만에 깃대봉(1014,8m) 정상에 섰다. 좁은 공간에 표지목과 간판이 세워있다. 이곳 역시 전망이 좋아 삥 둘러 다 보여 이곳에서 최고로 높은 산임을 보여주었다. 바로 아래 헬기장을 지나 갈림길이 있다. 직진하면 산봉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오른쪽 길은 질러가는 길이다. 조금 내려오면 ‘깃대봉 약수터’란 샘물이 있는데 떠서 먹을 수 있게 깨끗하다.

계속 내리막길로 오다가 좌측으로 꺾이면서 능선을 탄다. 참나무와 소나무 숲을 지나면서 또 갈림길이 나오면 좌측으로 내려선다. 묘지가 있고 그 아래로 육십령 휴계소가 넓게 자리잡고 있다.

다 내려와서 출발하려는데 회원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찾아보고 전화해도 불통이다. 뒤떨어졌는가 하고 기다려 보았지만 오지 않아서 불길한 생각이 들어 산으로 찾아 올라갔다.

내가 제일 꼴찌로 내려왔는데,.... 항상 앞서서 다닌 회원이 내려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으니 최악의 상태까지 잡념이 떠오른다. 받지 않지만 산을 오르면서 계속 전화를 했다. 수 차례 끝에 허둥대며 당황하는 음성이 들렸다. 나는 빨리 있는 곳을 말해달라 했더니 어딘지 모르겠다는 말과 동네가 보인다는 말이 조금은 내 가슴을 진정시켰다. 잠시 후에, 어느 동네라는 말을 우리 윤기사가 알아듣고 그곳으로 가서 무사히 올 수 있었다. 이유인즉 물어보진 안 했지만 취나물이 문제였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린 예정했던 대로 의암 주논개 생가에 들려 아름답게 신설해 논 전경을 모두 관람하고 잠시나마 역사의 한 토막을 떠올리게되었다.

 

무룡고개(9:00)-영취산(9:20)-첫째봉(9:50)-세번째봉(11:00)-북바위(11:30)-민령(12:10)점심식사후(12:35)출발-깃대봉1014,8m(13:15)-약수터(13:30)-육십령(14:30) (5시간 30분)

 

 

 

백두대간종주➇ 2004.5.27 29명 맑음

  육십령~할미봉~장수덕유산(서봉)~월성치~삿갓재~황점(9시간30분)

 

백두대간을 시작하며 제일 두려웠던 구간이 오늘 험하다는 할미봉능선이다. 게다가 오르는 길만 남덕유산까지 5시간 걸린다니 미리부터 겁먹고 단단히 고생할 각오했었다. 그러나 먼저 갔다온 진달래팀 회장의 말을 듣고는 다소 긴장을 풀고, 아침 일찍 6시에 출발했다.

육십령고개에 도착하니 7시 50분, 찻길을 건너 옹벽 친 옆으로 가면 길이 나있다.

대간 길은 소나무와 참나무 숲으로 그늘진 능선으로 시원했다. 나무사이로 큰산을 깎아 내린 채석장이 흉측스럽고 어수선해 보였다. 30여분만에 전망이 없는 작은봉에 올라서서 잠시 숨을 돌리고 왼쪽 길로 조금 내려가면 헬기장이다. 여기서부터 계속 오르막길로 30여분가면 지도에 나온 할미봉이다. 조망 안내판이 있고 전망이 탁 터진 할미봉에 오르면 웅장하고 높게 보이는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둥그렇게 펼쳐 보인다. 이제부터 책에서 본 난코스다. 밧줄 타고 암벽길로 서너 군데 내려온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괜찮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오면 무척 위험하겠다.

내려오면 제법 넓직한 공터를 만나게되고 재를 지나면 덕유교육원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난다. 이때가 10시 10분, 표지목에 남덕유3.6k 육십령5.4k 덕유교육원1.6k 표시돼있다. 다시 한번 땀을 빼고 오르면 두 번째 헬기장이 나온다. 전망이 무척 좋다. 우뚝 솟아있는 할미봉바위는 이제는 멀리 가고 산속에 교육원은 가깝게 와있다. 밟고 온 산봉들이 울툭불툭 내려다보인다.

또 한번의 밧줄 타는 위험지대를 지나 1시간정도 오르면 서봉이 시작되는 암봉으로 오르게된다. 그암봉을 타고 20여분 올라가면 표지목을 세워논 해발1492m의 서봉에 도착된다. 바로 앞으로는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있다. 백두대간지도책에는 1510m로 표기되어 있는데, 어쩌면 백두대간 책에 나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삥삥둘러 첩첩 산중이다. 논과 마을과 시내가 아주 멀리 보이는 것으로 보아 무척 깊은 산중으로 들어와 높은 산봉에 올라섰다는 실감이 난다.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하니 대전 소월산악회 회원들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50여명이 왔다는데 몇몇 회원들이 한번도 쉬지 않고 3시간만에 올라왔다고 한다.

남덕유산이 바로 눈앞에 있어 보이나 쉽지마는 않다. 철계단을 내려서서 한동안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하면 남덕유산정상이고 왼쪽길로 가면 월성치로 가는 길로 남덕유에서 내려오는 길을 만난다. 이제부터는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길로 몇 번 밟았던 길이다. 오늘산행 계획은 월성치까지 와서 하산코스를 결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일이 생겼다. 배탈이 나서 죽만 먹고 산에 온 회원이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하산해야했다. 따라오는 줄만 알았는데 회원 2명이 뒤에 쳐져서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고 전화해 보지만 불통이다. 1시간정도 흐른 뒤에야 간신히 통화해서 소월산악회 회원들과 월성치로 내려가 황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월성치에서 기다렸던 우리회원들은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때가 2시 30분, 시간이 충분해서 삿갓재까지 가서 황점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회원들이 가다가 서있다. “회장님 저기 보세요! 저곳까지 가야한다면서요? 대전에서오신 남자분도 삿갓재까지 가려다가 너무 멀고 힘들 것 같아서 뒤돌아 갔어요” 그말을 듣고 산을 올려다보았다. 울툭불툭한 산은 마치 큰 공룡이 꿈틀거리며 나를 쏘아보는 것처럼 사납게 보였다. 대여섯 봉은 되게 높이 솟아있는 뒤로 삿갓봉으로 보이는 제일 높은 뾰족한 산봉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구름이 끼어있어 난감했다. 회원들은 나를 보고 빨리 결단을 내리라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때 무엇인가 해내야겠다는 욕망이 불끈 치밀었다.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며 갑시다! 도전장을 던져놓고 빠른 걸음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계속 갔으면 이렇게 망설이지 않았을 텐데, 1시간을 섰다가 가려하니 꽤가 난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란 말이 이런 때 쓰는가보다. 모두들 지친 기색 없이 아까보다 더 잘 달아나 보이지 않는다. 큰 나무 밑에 취나물이 깔려 있는데도 쳐다볼 것도 없이 가버린다. 길도 외길이어서 길 잃을 염려가 없으니 걱정이 덜된다. 계속 오르막길을 수 차례 끝에 1시간 20분만에 삿갓재에 모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으니 마음이 놓인다. 사고는 언제나 내려갈 때 생긴다는 주의를 상기시키고 조심조심 내려왔다. 해외 등반 아니고는 처음으로 9시간 반이란 긴 시간을 걸었다. 지금까지는 백두대간이 어렵지 않다고들 했는데, 오늘은 과연 백두대간종주란 이런 것이구나! 나도 처음으로 느꼈다.

육십령(07:55)-헬기장(08:30)-할미봉1026.4m(08:57)-공터(09:42)-덕유교육원표지목(10:10)-두번째헬기장(10:23)-암봉(밧줄)(10:57)-암봉시작(11:48)-서봉1492m(12:10)-점심-회원찾느라1시간낭비-월성치1240m(14:25)-삿갓대피소1280m(16;05)-17:30

 

 

 

백두대간종주➈ 2004.6.3. 32명

 

황점-삿갓재-횡경재-송계사(9시간)

 

덕유산은 오르고 내려오는 시간만도 보통 4시간은 걸리기 때문에 짧게는 7시간에서 9시간은 걸린다. 오늘도 지난번에 이어 9시간을 타니 회원들 지친 표정들이다.

회원들한테는 차마 9시간 산행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힘들면 동엽령에서 하산하고 시간이 이르면 송계사까지 간다고 말하고는 동엽령까지 서둘러 갔다. 동엽령에 도착하니 12시 40분, 아무도 거기에서 하산하자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내 예측으로 오늘 계획은 무난했다.

지난번에 내려왔던 황점에서 시작하여 삿갓재까지 1시간 40분 걸리고 무룡산까지 1시간 걸렸다. 무룡산의 야생화 군락지는 7월 하순경이면 노란 원추리꽃과 보라색 지보꽃, 하얀 취나물꽃이 온산을 수놓아 보는 이마다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돌탑 봉에서 동엽령까지의 빨간 싸리꽃도 무리지어 핀 모습 또 한번 더 놀라게 한다. 땀흘리고 동엽령에 서면 언제나 시원한 바람이 맞아주어 바람의 고마움을 한층 더 느끼게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안성면 칠연폭포로 하산길이 있고 반대로 병곡리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동엽령 사거리에서 백암봉(송계삼거리)까지는 느린 걸음으로 1시간 걸린다. 백암봉에서 40분 정도 가면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에 올라설 수 있고, 대간 길은 우측 송계사 쪽으로 꺾인다.

30분쯤 가면 상여뜸으로 보이는 짧은 암릉길이 나오는데 거기서 보는 전망 참 좋다. 무룡산에서 쭉 이어진 대간길이 백암봉까지 아주 부드러운 곡선미로 눈앞에 펼쳐있다.

큰 나무 그늘 아래로는 온갖 연한 나물과 풀잎으로 덮어있어 그윽한 풀잎향기와 가끔은 더덕냄새가 심장까지 파고든다. 숲속에 있는 작은 헬기장을 지나고, 키가 큰 철쭉나무와 갈참나무가 배낭을 잡는 터널을 빠져 나오면 횡경재 표지판이 있는 사거리에 닿는다. 직진하면 대간 길로 이어지는 지봉, 왼쪽 길은 백년사3km, 오른쪽 직진 길은 송계사2.7km길이다. 우리는 오늘 여기 횡경재에서 하산한다.

송계사길로 들어서면 갑자기 돌과 자갈길로 위험한 직경사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40분쯤 내려왔을 때 회원 하나가 미끄러져서 팔을 다쳤다. 붕대를 감고 응급초치를 했으나 손이 부어 오르는 것으로 보아 심상치가 않다. 왜 가끔 이런 사고가 날까. 가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잘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아직 시간상으로 보아 1시간은 더 가야 할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4시다. 어둡기 전에는 하산할 것 같아 다소 안심은 되었다. 회원들 먼저 보내고 대 여섯 명이 천천히 뒤를 따르며 주차장에 도착하니 먼저 내려온 회원들과 1시간이상 차이가나 5시 50분이 되었다.

9시간 정도의 긴 산행이었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다치는 일만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황정(08:10)-삿갓재대피소(09:55)-헬기장1,2,3지나고 무룡산1491.9m(11:05)-돌탑봉(11:45)-동엽령1320m(12:35)-점심(13:10)출발-백암봉1420m(14:15)-암릉(상여듬)(14:50)-횡경재1350m(15:20)-송계사주차장(17:00)

 

 

 

백두대간종주➉ 2004. 6. 10. 39명

빼재-횡경재-삼공리주차장(8시간)

 

신풍령 휴게소를 지나칠 때마다 양쪽으로 높게 보이는 산이 도대체 무슨 산이며 산 높이는 어느 정도나 되기에 이렇게 높게 보일까하며 몹시 궁금했던 산이었다. 알고 보니 보통 산이 아닌 백두대간길이며 덕유산 줄기로 해발 천 이삼백 넘는 봉이 줄기차게 뻗어 있다. 지난번 횡경재에서 끝내고 송계사로 내려왔기에 이번에는 반대편인 백년사 코스로 하산하면 덕유산의 깊숙한 내면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오늘은 신풍령에서 횡경재로 와서 백년사로 하산하기로 정하고 신풍령 휴게소 위, 빼재 쉼터에서 내렸다.

뒤로 들어가면 숲 속에 리본이 달려 있는 나무사이로 오르면 곧바로 철탑이 나온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네모난 콘크리트 사각기둥에 국립공원 건설부라고 써서 세워놓고 십자선을 해 놓은 것이 다른 산보다 유달리 많아 의아한 생각이 든다. 30분 정도 오르면 뾰족한 산봉에 이정표가 세워있다. 횡경재 삼거리 6.8km 신풍령 1km, 몇 발작 지나면 안내판이 있고 빨간 깃발과 노란 깃발을 꽂아 놓았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리막길과 순탄한 능선길이 이어지면서 키가 큰 철쭉나무숲을 걷는다. 공터 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르다. 숨차고 땀흘리는 그런 길을 20여분 오르면 숲속에 갈미봉이란 표지목이 있다. 작은 암봉을 지나고 내려가다가 다시 오르고 15분만에 펑퍼짐하고 둥그런 대봉을 오르게 된다. 이제야 높은 산 위에 올라온 실감이 난다. 그늘이 없는 뙤약볕이지만 천지사방이 다 보이고 바람불어 시원하다. 오른쪽으로 큰 능선이 있어 지도를 꺼내어보니 해발 1274.7m되는 투구봉이다. 대간길은 고개로 쭉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지봉이 아주 높아 보인다. 잠시 전망을 둘러보며 기념사진 찍고 30여분을 내려왔다. 내려오는데 주위가 모두 싸리나무의 천국이다. 7월 말께는 온 산이 빨간 핏빛으로 물들일 것 같다.

앞에 있는 지봉과 지나온 대봉 사이의 이 고개가 월음령이라 생각이 든다. 30여분을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는 길은 얼마나 또 숨차고 힘들까? 여기서부터 50분 올라가면 지봉이다. 지봉은 표지목에 못봉이라 써있고 해발 1342.7미터나 되는 높은 산이다. 횡경재가 1.7km남았으니 이제 거의 다 온 듯 홀가분했다. 향적봉의 철탑도 보이고 설천봉의 건물과 칠봉의 능선과 중봉, 백암봉이 모두 보여 북덕유산의 전망대라 생각했다.

지봉에서 5분 내려오면 헬기장이 있고 더 내려오면 지봉 안부에 서게 되는데 왼쪽은 송계사로, 오른쪽은 백년사로 하산하는 사거리 길이다. 지도를 보면 오수자길이 2km, 거리로 보아 주차장까지 3시간이면 충분하겠으며 송계사는 2시간이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전진했다.

4시간 여만에 지난주에 끊었던 횡경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하산한다.

이곳도 오수자로 가는 길이 표시돼 있다. 그 길로 들어가니 자꾸만 위로 올라간다. 20여분 올라가다가 보니 길이 사납고 풀숲에 묻혀 희미해져 이게 아니다싶어 뒤돌아 서서 아까 보아 놓았던 지봉안 사거리로 간다.

이렇게 40분 허비했다. 그러나 시간은 충분하다. 이제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쳤던 취나물이 생각난다. 덕유산은 취나물이 많다. 그러나 자연보호를 부르짖는 봉사단체이니 만큼 마구잡이로 뜯을 수 없어 마음은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 일수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같이 백두대간 종주하는 사람들 이외는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길 양옆으로 산나물이 쫙 깔려 있어 도저히 보고만 있지 못하고 한줌씩 뜯고는 죄지은 기분이었다. 하산길에서 35분 정도 내려오니 오수자길과 만났다. 백년사까지 1시간 10분 걸리고 주차장까지 모두 3시간 걸렸으니 내 예상이 적중했다. 백년사에서 시멘트 포장길이 지루하고 발이 아팠지만 나는 오늘 새로운 길을 알게되어 마음이 흐뭇했다.

 

신풍령920m(빼재)(08:40)-갈미봉1210.5m(10:05)-대봉1263m(10:20)-달음재(11:00)-못봉1342.7m(11:50)사진.휴식-12:05분 출발-지봉안부(12:15)-횡경재(12:40)-점심( 13:10)-지봉안부(25분걸림)-오수자길로 무주구천동주차장(3시간걸림)

 

 

 

백두대간종주 11 2004.7. 1. 31명

 

빼재에서 덕산재 (08:45-17:00)- 등산시간 8시간

 

6월 셋째 주 목요일 날에는 비가 많이 와서 백두대간을 잊지 못하고 20여 일만에 찾아왔다. 오늘도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는 있었지만 큰비가 오지 않는 한 종주 하려고 마음먹고 단단한 각오로 출발했다.

신풍령으로 가서 빼재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지난번에 보아 두었던, 옹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수로를 건너 산길로 들었다. 새벽에 내린 비로 나뭇잎에는 빗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스치기만 해도 주르르 떨어져 옷이 다 젖는다. 무성한 숲속 길로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걷는데 얼마쯤 갔을까? 싸리나무천국이다. 온산을 빨갛게 덮어버린 싸리꽃은 참 아름다웠다. 그러나 물을 잔뜩 먹은 싸리꽃은 엎으러져 길을 막고 옷을 잡아당기며 배낭을 잡았다. 그런 길을 헤치며 걸으면서 입으로는 탄성을 토하며 걸었다. 길을 벗어나면 길을 잃기가 십상이다. 그렇게 1시간 반쯤 가니 오른쪽으로 리본이 달려있는 하산길이 있었다. 이곳이 삼봉산 바로 아래에 있는 금봉암으로 내려서는 길이었다. 지도를 보면 중간 중간에 양쪽으로 길이 많이 있는데 오늘은 숲이 우거져 길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서 또 오르막길로 10여분 올라가면 전망이 좋은 암봉에 서게되며 그 위로 몇 발짝 올라가면 삼봉산에 오르게된다. 정상에는 안내문과 십자석이 있고 德裕三峰山(1254m)이라 쓴 표지석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양쪽으로 탁 트인 날카로운 암능길이다. 그러나 암봉으로 된 능선과 산봉우리만 보이고 아래는 하얀 구름바다였다.

해가 반짝 구름사이를 비집고 나와 비추니 구름은 더 하얗게 눈이 부시다. 시원한 바람은 가슴으로 파고 들어와 온몸의 땀을 식혀주어 상쾌하기만 하다. 그때 신기한 풍경을 보았다. 갑자기 하얀 구름이 아래에서 밀물같이 밀려오더니 능선 벽에 부딪치며 반등하여 하늘로 치솟아 오르다가 폭포수처럼 떨어지면서 쏜살같이 달아났다. 새들도 덩달아 소리치며 날아다녔다.

마치 바다 속의 섬 산행을 하는 것처럼 구름바다 위 돌산을 걷는다. 그런 능선 길을 지나고 삼거리가 나오면서 직진할 것 같았는데 대간 길은 우측의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갑자기 급경사로 아주 험난한 돌길이다. 바짝 긴장을 하고 천천히 내려왔는데 내 생각으론 어쩌면 해발700미터는 족히 내려온 것 같았다. 내려오다 말고 쉼터로 보인 곳에서 쉬기 겸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많이 내려왔으니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앞섰다. 해발 1230여 미터가 다 되는 삼도봉과 대덕산이 우리가 금방 내려왔던 삼봉산과 높이가 같으니 내려온 만큼 올라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올라갈 일이 꿈만 같게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10여분 내려오니 넓은 고랭지 배추밭이었다. 배추밭 사이의 농로길로 들어서 내려오는데 장마 속에 해가 반짝 뜨니 포장도로 길은 매우 따갑다. 오다보니 버스가 다니는 2차선 도로를 만났다. 여기가 지도에서 본 소사고개였다. 찻길 건너 숲에는 길을 알리는 리본이 몇 개 붙어있어 그길로 들어섰다.

묘지를 지나고 다시 넓은 배추밭이 있다. 배추밭 가장자리의 나무에 매달린 리본을 보고 걷다보면 장마통에 밭이 무너져 내려 길이 없어지면서 밭의 난간으로 가야했다. 다시 임도와 농로가 나오면서 대단지의 고랭지 배추밭이 나온다. 이런 길로 1시간은 넘게 올라갔다. 다행스러운 것은 가끔씩 대간 표시리본이 붙어있어서 헤매지는 않았다. 마지막 산길로 들어서려는데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농막에서 쉬고 있었으며 밭주인인 듯한 중년 남자분이 이 길로 쭉 가면 삼도봉과 대덕산이 나온다고 말해주어 안심이 되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뚜렷하다. 그리고 오르막길이다. 땀을 빼고 40여분 올라가면 전망이 잘 보이는 묘 등에 오르게 되면서 우리가 밟고 온 뾰족한 삼봉산과 소사고개, 마을과 고랭지 밭이 한눈으로 다 보인다.

다시 20여분 오르면 경상남북도와 전라북도의 3道가 만나는 삼도봉이다. 정상에는 삼도봉(조점산)이라고 쓴 아주 작은 표지석이 세워 있다.

삼도봉에서 50분정도 가면 헬기장과 바로 그 위에 대덕산이 나오는데 산 전체가 또 널부러지게 핀 빨간 싸리꽃이 장관이다. 싸리나무는 번식률이 강한 모양이다 길을 아예 덮어버려서 얼굴과 옷과 배낭을 잡아끌어 빠져 나오는데 하루종일 성가시게 굴었다. 노랗게, 하얗게, 또는 빨갛게 핀 이름 모를 야생화가 만발하여 그 아름다음에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대덕산은 이름만큼이나 크고 덕스럽게 느껴졌다. 펑퍼짐한 넓은 공터로 헬기장이었고 이곳에도 역시 안내판과 십자석이 있고 (해발1290m)대덕산의 표지석이 있다.

이제 오늘 산행도 거의 다한 듯 마음이 상쾌하다. 그러나 하산길은 언제나 쉬운 것 같지만 더 조심을 해야한다. 비가 온 후라서 길이 미끄러워 조심을 한다해도 내 앞뒤에서 미끄러지는 소리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20여분 내려오면 약수터가 있다. 하루종일 물 구경 못하다가 처음으로 보는 물이니 이런 때를 들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격이라 하던가.

덕산재는 아주 널따란 찻길과 주인 없는 매점이 있고 이정표와 산지도가 세워져 있다.

 

빼재(08:45)-금봉암갈림길(10:15)-덕유삼봉산1254m(10:30)-11:30(점심)-11:55분,출발-소사고개(12:33)-삼도봉1248.7m(14:35)-대덕산1290m(15:28)-얼음골약수터(16:00)-덕산재640m(17:00) (8시간 걸림)

 

 

 

백두대간 12일째. 7월 15일

덕산재에서 부항령(삼도봉터널) 등산시간 2시간 30분

장마철이라서 왠만한 비라면 맞을 각오로 산행을 하지만 오늘은 큰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산행은 일단 오후로 미루고 전주에 있는 덕진공원으로 향했다. 회원들은 차가 반대방향인 호남고속도로 들어서니 의아해서 오늘은 어느 산으로 가느냐 묻는다. 오늘은 후덥지근한 날씨에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니 드라이브 겸 덕진공원에가서 연꽃도 보고, 덕산재로 가서 3시간거리의 대간길을 가자고 했다. 그리고 오다가 제원에서 어죽 먹고 오자하니 모두들 놀라면서 눈이 둥그레진다. 날마다 산만 고집하고 강행하던 사람이 오늘은 어쩐 일로 풀어졌나 하는 눈치다. 그러나 거짓말을 할 리는 없고, 빗속에 어떻게 등산할까하며 내심 걱정이 되던 차에 모두들 좋아하며 박수까지 친다.

마침 장계자씨와 이순우씨가 맛있는 쑥송편을 해와서 나누어 먹으며 관광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떠났다. 덕진공원에 도착하니 오던 비도 그치고 날씨가 좋았다.

우리는 한줄로 나란히 연못 가운데에 설치한 다리를 건너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연분홍색 연꽃은 넓은 잎사귀 사이로 올라와 드문드문 피어난 모습이 불을 밝혀 논 연등같이 엄숙하면서 고상해 보였다. 넓은 연못가로 또는 물 속으로 목재다리를 놓아 한바퀴 돌면서 감상에 빠져버린 회원들은 “참 좋다 좋다고”하면서 이곳에 오길 잘 했다고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거기에서 나와 덕산재까지는 2시간 반정도 걸리는 아주 먼 길이다. 12시가 넘어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대간 종주산행은 시작되었다.

25분쯤 가면 삼거리다. 좌측길로 10분 정도 가면 공터가 있는데 여기가 833.7봉인 듯 하다. 전망이 별로 좋지 않아 쉬지 않고 전진한다. 내려가다 다시 오르고, 산행이 짧다 생각하니 별로 어렵지도 않고 즐겁다. 숲속에는 야생초와 야생화가 많은 산이다. 쭈욱 올라온 꽃대궁에 하얗게 송송이핀꽃, 한줄기에 10여송이 넘게 많이 매달려핀 주황색 산나리꽃, 이름 모를 꽃들과 처음 보는 꽃들이 여기저기 산을 수놓았다. 이런 곳에 사진작가나 식물학자인 야생화 탐사자들이 와서 본다면 새로운 꽃을 발견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렇게 산을 자주 다니면서 휘귀한 꽃이나 아름다운 야생화를 볼 때는 사진작가의 꿈이 생각난다. 하지만 한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없듯이 한 마리의 토끼는 눈으로 보고 사랑하며 놓아 주어야한다. 능선에서 낙엽송 군락을 만나고 더 올라가면 헬기장이다.

헬기장에서 10여분 내려오면 나무사이로 아스팔트길이 가깝게 보여서 부항령이라는 것을 얼른 알 수가 있다. 생각보다는 빨리 왔다싶어 시계를 보니 2시간 10분밖에 되지 않았다. 3시간코스로 알았는데, 빨리 온 것인지 아니면 지도에 잘못 표시된 것인지.....

어쨌든 다 왔으니 오늘 일을 책임완수 한 것처럼 마음이 가볍다. 차를 타고 오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퍼부었다. 대전에는 낮부터 비가 많이 내려서 식구들은 산에 있는 우리가 걱정이 되어 전화하고 야단이었는데 고개하나 내려와 무주에 오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제원에 오니 적벽강 물이 홍수를 만난 것처럼 물이 꽉 차서 흘렀다. 올 때는 아침에 약속한대로 제원에서 별미인 어죽과 도리뱅뱅이를 먹었다. 처음 먹어본 회원들도 맛있다고 한 그릇 거뜬히 먹어치우고 행복한 모습들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눈도, 입도, 다리도, 모두 즐거운 날이었다.

그 대신 다음주에 만나 오늘 가지 못한 삼도봉에 도전하기로 약속했다.

 

덕산재(12:38)-삼거리(13:05)-폐광터(13:15)-고개(13:40)-헬기장(14:45)-부항령(14:55)

 

 

 

백두대간 13일째. 7월 22일

 

부항령-삼도봉- 등산시간 8시간

 

오늘은 푹푹 찌는 삼복더위에 수많은 산봉을 넘고 넘어 장장 8시간을 걸었다. 지난번에 부항령까지의 2시간10분 코스를 해 놓지 안 했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다.

부황령 삼도봉 터널을 빠져나가 곧바로 내려서 찻길을 건넌다. 산으로 진입해 대간 길까지 가는 몇 분 동안에 강렬하게 쏟아 붇는 불볕은 온 대지를 불가마로 만들었다.

탁탁 막히는 가슴과 줄줄 흐르는 땀방울을 손으로 쓸어 내리면서 숲으로 들어섰다.

능선으로 올라 숲길을 걸으니 이제야 시원한 바람이 솔솔 가슴으로 스며든다. 막혔던 숨통을 서서히 터주며 생기를 불어넣어 주어 살 것만 같다.

계속 오르막길로 1시간쯤 가서 첫째 봉에 선다. 여러 명이 설 수 있는 공간이지만 전망은 없다. 가파른 내리막으로 내려와 다시 숨가쁘게 둘째 봉에 올라가는데 키가 큰 도토리나무 숲이다. 올라갈수록 차츰 작아진 나무숲에 조그만 헬기장에 있다. 전망이 퍽 좋다. 뺑 둘러 첩첩 산으로 무슨 산인지 잘 모르겠으나 대덕산과 덕유산은 선명하게 보였다.

갑자기 길이 좁아져 잘못 들어섰나 의심할 정도로 좁은 숲속 길을 헤치며 내려온다. 철쭉터널을 지나고 다시 급경사 길을 올라서니 몇 평 남짓한 둥그런 공터에 보기 드문 야생화가 만발하여 참 아름다웠다. 사방팔방 다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에 서니 시야가 탁 트여 시원하기 그지없다. 여기가 어디쯤인가 궁금하여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무풍면이라 쓴 十字石 만이 있을 뿐, 아무런 표지가 없다.

갈길을 보아도 우리의 목적지인 三道峰은 보이지 않고 또 하나의 거대한 산이 막혀 있을 뿐이다. 내려오니 넓은 산등이 벌겋게 다 파헤쳐 있다. 왕복 6차선 도로는 되게 아래에서 위까지 양쪽으로 판판하게 다듬어져 있다. 자동차 도로를 내는 것인지, 깊고 울창한 산 속이라서 보이지 않아 알 수가 없다. 그곳을 건너가면 풀이 가득한 林道가 나온다. 그 길 따라 조금만 가면 오른쪽으로 표지리본이 붙은 길이 나온다. 좁은 길로 한참 오르다보면 쭉쭉 뻗은 키가 큰 전나무 군락이 있으며 땅에는 비단같이 매끈한 풀밭으로, 융탄자를 깔아 놓은 것처럼 깨끗하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회원들 모두 만날 때까지 쉬었다.

12시 30분, 날씨가 더워서인지 회원들 모두가 지친 기색이다. 빨리 끝냈으면 좋겠는데 시간상으로 보아도 아직 2시간은 넘게 올라가야 삼도봉에 갈 것 같아 지겨운 생각이 든다. 또 오르막길, 오늘은 오르고 내려가고 수도 없는 山峰을 넘고 넘었다.

55여분만에 또 하나의 큰 봉에 올라서니 그때야 민주지산의 岩峰이 보이고 석기봉 삼도봉이 연이어 보였다. 그러나 거리로 보아 멀게 보이지만 어렵지는 않게 보였다.

구불구불 작은 고개 몇 차례 넘고 마지막 삼도봉 아래 사거리에 도착했다.

오른쪽은 경상도 땅 헤인리로 가는 길이고 왼쪽 길은 전라도 땅 대불리로 가는 길이다. 빤이 올려다 보이는 침목 계단 길, 뜨거운 태양 볕이 쏟아지는 한나절에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한증막에 들어가도 이처럼 땀이 많이 흐르지는 않았다. 한발 두발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데 갑자기 가슴이 쿵덕 쿵덕 뛴다.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 같아 진정시키려고 앉아서 물을 마시며 쉬었다. 나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땀을 너무 많이 흘린 것 같다.

2시 35분, 드디어 5시간 30분만에 삼도봉에 섰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가 만나는 경계선으로 삼도 화합비가 세워있다. 일년에 한번씩 삼도주민들이 만나 아주 푸짐한 행사를 갖으며 대화합을 갖는다 한다. 기념 사진을 찍고 늦게 올라오는 회원들을 기다렸으나 오는 기색이 없다. 왔던 길로 조금 내려가 보니 몇 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알고 보니 오늘 등산을 오기 위해 어젯밤 서산에서 제사지내고 새벽에 와서 나온 박문숙씨가 점심 먹은 것이 체 했다한다. 수지침으로 따고 괜찮아진 후 천천히 출발했다.

오늘 코스는 삼도봉에서 황룡사 쪽으로 한참을 내려오다가 헬기장이 있는 사거리에서 끊는다. 여기서도 헤인리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다음에는 거꾸로 우두령에서 시작하여 이곳에서 헤인리로 하산할 생각으로 헤인리 길을 살펴보니 수풀에 가려 희미했다.

여름철 피서지로 알려진 물한리계곡로 하산했다.

 

부항령(09:00)-첫째봉(10:00)-둘째봉,헬기장(10:30)-세번째뾰족봉(12:00)-낙옆송군락(12:30)점심-출발(13:20)-네번째봉(13:55)-삼도봉안부(14:10)-삼도봉(14:35)-휴식후,출발(15:15)-갈림길(15:30)-물한리 주차장(17:00)

 

 

 

백두대간 14일째. 2004. 8.25 비

우두령-화주봉-삼도봉아래(7시간)

 

지난 한달 동안 폭염과 장마로 인해 대간 산행을 잊지 못하고 대전근교의 보문산과 계룡산만 찾았었다. 이제 더위는 한풀 꺾인 듯 하여 그동안에 하지 못한 것 보충하기 위해서 오늘이 네 번째 목요일인데도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어제부터 내렸던 빗줄기는 오늘도 멈추지 않고 간간이 내리다가 목적지인 우두령에 도착할 때는 흐릴 뿐 비는 오지 않았다.

오늘은 지난번에 내려온 곳에서 시작하지 않고 거꾸로 우두령에서 시작하여 삼도봉쪽으로 하산한다. 오르는 길을 쉽게 내려오기 위해서 꽤를 좀 부린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황간 나들목으로 나가서 민주지산가는 길로 가다가 상촌에서 구성면 가는 579번 도로를 타고 간다. 우두령 고개는 표시가 없어 잘 모르지만 신풍령 못지 않게 높은 고개로 영동 황간과 김천을 잊는 고개였다. 이 고개에서 내려 별 어려움 없이 숲속 길로 1시간 오르면 전망이 보이는 헬기장이다. 여기에서 회원들 모두 만나서 확인하고 출발하려는데 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점점 굵은 빗줄기가 내려서 갈 길이 먼데 이렇게 종일 퍼부어 댄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찻길과는 멀어지고 옷도 다 젖었으니, 잡풀 속을 헤집고 40분만에 오른 곳이 화주봉(1207m) 정상이었다. 그런데 회얀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렵사리 뾰족한 암봉에 올라서는 순간, 비는 뚝 그치고 전망이 툭 터져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눈아래 펼쳐있다. 얕은 계곡으로 깔아놓은 솜털 같은 구름은 검푸른 산고랑 사이로 짙게 깔려 있고 짙은 구름 속에 갇혀있던 햇살이 고개를 밀고 나오는데 세상은 솜사탕을 깔아놓은 듯 희고 깨끗하여 눈이 부셨다. 모두 환호성을 치며 기뻐했다. 비 맞고 고생하며 찾아온 대가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이 들었다. 이쪽과 저쪽의 차이가 이렇게 다를 수가?

그러나 10분쯤 걸었을까 어디서 숨었던 구름일까 온산을 꽉 덮어버리고 또다시 비는 계속 쏟아졌다. 급경사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길은 루프를 타고 올라가는 암벽이다. 붙잡을 곳이 있어 크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비나 눈이 와서 미끄러울 때는 위험구간으로 봐야 되겠다. 50분만에 뾰족한 암봉(1175m)에 올라서니 최고의 전망대다. 내가 중심이 된 듯, 세상이 나를 바라본다. 멀게 보이는 좌측으로 휘어진 능선이 보인다. 그 능선을 타고 넘으면 삼도봉 안부에 닿을 것으로 알았는데 그 봉을 넘고도 몇 개나 넘어 시간으로는 2시간을 넘고 걸었다. 비 쏟아지는 산길을, 내 키를 넘는 잡풀 속을 헤치며 걸으면서 이제 지겨운 생각도 들었다. 비가 오고 자리도 마땅한 곳이 없어 점심도 먹지 못하고 1시가 넘어서야 밀목재에 와서 먹었다. 과연 백두대간종주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밀목재를 지나 1123봉에 올라서니 그때서야 오던 비도 그치고 툭 터진 전망을 볼 수 있었다. 표지목과 표지판 십자석도 있는 봉이었다. 거기에서 40분 더 내려와서 삼막사의 헬기장에 닿았다. 오늘같이 비를 많이 맞아 본적은 등산이레 처음이다.

 

우두령(8:45)-헬기장(9:47)-화주봉1267m(10:28)-1175봉(11:20)-밀목재(13:00)점심-1123봉(13:30)-헬기장(삼도봉안부)(14:10)-물한리(15:40)

 

 

 

백두대간 15일째. 2004, 9, 2

 

우두령-황악산-궤방령--등산시간 6시간20분

 

유난히 무더웠던 더위는 한풀 꺾기고 황악산에는 벌써 가을이 찾아 왔나보다.

지난주와 같이 황간에서 우두령으로 가서 시작한다. 절개지에서 리본을 보고 올라가면 곧바로 숲속에 헬기장이 있고 계속 펑퍼짐한 능선을 타고 가다보면 취나물과 야생화가 많아 눈길을 끈다. 시원한 바람속에 별 어려움 없이 1시간 50분만에 전망대로 보이는 공터에 오르게된다. 이곳이 무얼 했던 곳인지 꼬블꼬블 임도가 산정까지 나있고 전선줄이 끈긴 전봇대와 간이화장실도 있다. 임도로 내려와서 몇 발짝 걷다가 좌측 산길로 들어와 작은 고개 넘어서면 또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왼쪽으론 산사태가 나서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이곳에서 무심코 임도만 보고 간다면 길을 잘못 갈 수 있는 곳이다. 임도에서 우측으로 꺾어질 때 곧바로 질러가는 길을 놓치면 안 된다. 이 길로 내려서야 앞에 보이는 산으로 붙을 수 있다. 여기가 억새 군락지다. 억새 숲을 헤치고 내려가는데 아직 활짝 피우지 못해 자주색으로 핀 억새가 물결처럼 파도치는데 깜짝 놀랐다. 온 산등과 산정에 무리 지어 있어 황악산 하면 억새가 떠오르며 가을 산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다. 이 억새 군락지를 내려서면 헬기장이 있고 바람재다.(10:50) 한차례 땀을빼고 올라서니 신선봉 이라는 노란 표지목이 있다. 직지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형재봉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형재봉에서 조금 내려오면 전망이 좋은 왕소나무 밭이 있다. 난간에 서서보면 김천시내가 보이고 산속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직지사가 고풍스럽게 보였다. 이곳에서도 능여계곡으로 해서 직지사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있다.

이곳에서 20여분 올라가면 황악산정상이다. 나무로 둘러싸인 정상에는 표지석과 표지판 돌탑이 있다. 아래로는 헬기장이 있는데 여기에 곤천산 가는 길과 직지사로 가는 길이 있다. 여기서 잠시 혼동이 있었다. 곤천산 길은 아니어서 직지사로 내려오는데 내려오면서도 백두대간 표지기가 없어 잘못 왔나 걱정하며 내려왔다. 내리막길로 40분을 내려오기까지 그 많던 리본도 어쩌다 눈에 띠었다. 그것마저 어느 산악회인지 그 산악회서만 붙인 것이어서 잘못 붙인 리본은 아닌가 걱정하며 내려왔다.

운수암에서 올라오는 사거리 길에 표지목이 있지만 여기에도 백두대간이란 표시가 전혀 없다. 여시골산이란 표지가 있어 그때야 안심을 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정상아래 표지목과 이곳에 백두대간 방향표시를 넣었으면 참 좋겠다. 직지사로 내려가는 길은 대로였는데 이제부터는 오솔길이다. 운수봉을 지나고 25분가니 땅굴이 있었다. 여시골 산으로 생각되는 이 땅굴은 끝이 보이지 않아 좀 섬뜩했다. 급경사의 자갈길을 통과하면 산을 깎아놓은 공터로 내려선다. 이곳에서 큰길로 내려서지 말고 밭 우측으로 붙어 계속 내려가면 다시 산이 나오고 길 따라 가면 궤방령 찻길로 내려서게 된다.

 

우두령(8:40)-전망대1030m(10:30)-바람재.헬기장(10:50)-형재봉(12:15)-황악산1111.4m((13:00)-직지사사거리(13:40)-땅굴(14:15)-궤방령(15:00)

 

 

 

백두대간 16일째. 9월 9일

 

궤방령에서 추풍령까지--등산시간 5시간 40분

 

지난주에 내려왔던 궤방령을 찾아 길을 건너서 리본이 붙은 야산으로 진입했다. 능선을 타고 30분정도 가니 양쪽 마을을 잇는 고개 길이 나왔다. 왼쪽으로는 넓게 다져진 공터에 건물을 신축하는지 요란한 기계소리가 옆에 사람 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쩌렁쩌렁 온 산을 울린다. 배부른 하나의 산이 해산을 하느라 진통을 겪는 소리다. 우리는 산에서 소리치면 안 된다고 야호! 소리로 못하는데, 이 산에서 사는 나무와 산짐승과 곤충, 작은 미생물까지 이렇게 전쟁터처럼 시끄러운 속에서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나무들이 부스스해 보인다.

야산이지만 동네하고는 멀리 떨어진 얕으막한 산을 넘고 넘어 가면서 예쁜 야생화를 많이 보았다. 초롱초롱 줄줄이 매달려 핀 보라색 잔대꽃, 하얀 취꽃, 빨간 풀꽃과 여러 가지 색깔의 버섯도 한몫을 차지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어려운줄 모르고 2시간 30분만에 해발701m나 되는 가성산에 올랐다. 나무로 둘러싸인 둥그런 공터에 세멘트 포장을 해놓고 영동군 매곡면 체육회서 세운 작은 표지석이 있다. 이곳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을까 하다가 더 높은 놀의산에서 찍지 하고 갔는데 놀의산에 가서도 사람들이 많아 찍지 못했다.

여기서 내리막길이 좀 험했다. 그렇치만 내려오고 나서부터는 널따란 평원위에 큰 참나무숲을 만난다. 한참동안 참나무숲이 이어지다가 다리 올라가서 풀로 가득한 헬기장표시를 해놓은 공터를 만나고 여기서 20분가니 정상의 헬기장으로 올라서게 된다. 정상은 아무런 표시가 없다. 다만 십자석만이 땅에 붙어있다.

주의를 둘러보니 전망이 최고였다.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서 놀의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천에서 온 산악회 회원들이 정상을 꽉 매웠다. 백두대간 종주자들인가 하고 물으니 이 산을 오르기위해 왔다고 했다. 나는 이산을 아직 모르고 이번에야 종주하면서 왔는데 올라와보니 툭 터진 전망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밟고온 산들이 불륵불륵 부드러운 자태로 말없이 보인다. 네가 앞으로 저 많은 산들을 밟고 먼곳까지 간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뿌듯하여 오른다.

놀의산에서 계속 내려오면 밭길과 묘지등을 거쳐 굴을 지나게된다. 굴에서 바로 갈림길이 있는데 왼쪽으로 리본이 붙어있는데 그 길이 빙 돌아오는 길이다. 오른쪽이 곧바로 오는 길이며 기찻길를 건너 큰길로 오면 추풍령의 노래비가 있는 추풍령까지의 대간길이 끝나는 곳이다.

 

궤방령(8:30)-가성산701m(10:30)-헬기장(11:40)-놀의산(12:00)-점심,휴식(12:45)-추풍령(14:10) (5시간 40분)

 

 

 

백두대간 17일째. 9월 16일

 

추풍령에서 큰재까지

 

오늘은 등산이레 처음으로 두 패로 나누어 등산했다.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려서다.

비가와도 꼭 산에 간다는 회원 10명만 이끌고 나머지회원들은 비가 그치고 나면 종점으로 가서 거꾸로 등산을 하다가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나를 포함한 10명이 비가 주룩주룩 오는 산행을 집행했다.

20여분 올라가니 벌써 빗물과 땀으로 젖어버린 옷과 등산화가 발에서는 물소리가 찌걱찌걱 난다. 뾰족한 산머리에 올라서니 굵은 철사 줄로 땅을 묶어 놓았다. 넘겨다보니 내가 서있는 곳이 반 토막이 된 산꼭대기 난간이었다. 수직으로 깎아서 절벽이었고 아래로는 넓은 공터가 된 채석장이었다. 얼마 안 가서 지금 내가 선 자리도 다 파헤쳐 없어지겠구나 그러면 백두대간길은 또 어떻게 변할 것인가.

직경사길을 내려와 다시 앞산으로 올라간 후 계속 야산의 능선을 걷다보면 좌측으로 꺾이며 내려가서 우마차가 다닐 수 있는 소로를 만난다. 여기가 사기정골이다. 거기서 보면 앞산에 안테나가 있는 산이 우측에 보이는데 지도에 나오는 묘함산이다. 임도로 조금 가다가 산속으로 들어서서 올라가면 차도 다닐 수 있는 찻길이 나온다. 찻길 건너 바로 표시리본이 있고 큰길로도 리본이 붙었다. 책을 읽어보면 큰길로 쭉 내려가도 된다고 하였으나 마을로 내려가는 것 같아서 리본이 붙은 산길로 들었다. 그러나 힘들게 올라가 다시 능선을 타는가 싶더니 다시 내려와 아까 그 임도로 내려섰다. 임도를 타고 내려오다 다시 산길로, 또 임도로 나오고, 길을 잘못 가고있나 은근히 걱정이 되다가 왼쪽으로 납골당을 보고야 제대로 가고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임도를 벗어나 산속으로 들어가서 묘지마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작점고개는 차가 다니는 2차선 도로다. 준공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깨끗하고 팔각정과 쉼터도 만들어 놓았다. 아직도 공사중인지 현장 인부들이 일하며 산으로 오르는 돌계단도 오늘 마무리를 해놓았는지 깨끗한데 우리한테 이 길로 올라가라 불렀다. 거기서부터는 계속 전망도 보이지 않는 숲길로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3시 25분에 높고도 넓은 헬기장에 닿았다. 여기가 용문산이다. 뺑 둘러 전망이 좋다. 바로 아래에서 사람소리가 들리는데 용문산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소리 같다.

여기서 앞산이 국수봉이다. 그러나 쭉 내려가서 또 올라가야 하는 국수봉을 보니 어떻게 갈까 까마득했다. 회원들도 앞산을 보고 미리 지치는지 얼마나 더 가야하느냐고 자꾸 묻는다. 나는 차마 대답을 못했다. 아직 계획했던 시간이 2시간은 더 가야 하기 때문에 지쳐있는 회원들한테 말을 못했다. 이제 저 산만 가면 된다고 말하고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간신히 올라서니 그곳에도 국수봉이란 푯말이 아무 곳에도 없다. 지도가 잘못 표기했는지 한 봉을 더가서 전망대 표시를 한곳에 ‘국수봉’이란 표지석이 있었다. 정말 반갑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굉장히 높은 산에 온 듯 기쁘다. 이 산을 오기 위해 하루종일 달려온 듯 감격스럽다.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가서 설악산이란 표지석을 보고 가슴 뿌듯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제 1시간 정도만 내려가면 된다니 다 온 듯, 해냈다는 기쁨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어렵지 않게 내려왔다. 꼭 9시간만에 목적지인 큰재에 도착했다. 아무 사고 없이, 지친 기색 없이 기쁜 표정으로 도착했다.

 

추풍령표지석(9:00)-사기정골(11:25)-묘(점심)-작점고개(13:30)-용문산(15:25)-국수봉(16:50)-큰재(18:00)

 

 

 

백두대간 18일째. 10월 20일 (화)

  

지난 9월 16일날 추풍령에서 큰재까지 끝내고 오늘 속리산으로 껑쭝 뛰었다. 얕은 산은 동절기로 미루고 높고 험한 산을 먼저 끝낼 마음에서이다.

그동안 단풍구경도 할 겸 연중행사처럼 설악산을 찾아가느라 한번 쉬었더니 대간종주 했던 기억이 가물가물 하기만 하다. 오늘은 우리회원 몇 명과 남편 한 분을 모시고 법주사\에서 세심정-천황봉- 문장대-세심정으로 돌아왔다.

세심정에서 오른쪽 구름다리 건너 천황봉 방향의 푯말을 보고 올라갔다. 가파른 돌계단과 통나무계단으로 1시간 반쯤 올라가니 큰 암봉이 눈앞에 있고 상고암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거기가 천황봉에서 내려와 문장대로 갈 때 그 길인 줄 알았는데 석문 아래서 문장대로 가는 길이 또 있었다.

천황 石門에서 흠뻑 젖은 땀을 식히고 정상을 향해 걷는다. 정상 못 미쳐 상오리로가는 길이 있고 헬기장이 있다. 이 길은 오래 전에 휴식년에 묶여 입산금지가 된 길이다. 짧은 암릉을 지나 울툭불툭한 암봉에 이르니 천황봉이란 하얀 돌비석이 가운데 서있다. 먼저 먹으려고 싸 갖고 간 막걸리와 과일, 돼지족발을 천황봉 비석아래 차려놓고 천황신께 감사를 올리고 맛있게 먹었다. 아래는 오색찬란한 단풍으로 무르익은 가을이지만 위로는 벌써 초겨울처럼 잎이 다 떨어져서 쓸쓸했다. 그 바람에 전망이 잘 보여 오히려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다음에 종주 해야할 형제봉 능선이 파도처럼 이 정상을 향해 밀려오는 듯이 보였다. 문장대쪽으로는 괴괴한 암봉들이 쭉쭉 하늘 향해 서 있는가하면 목을 들고 있는 뱀 형상의 바위도 있고 立石대 비로봉 문장대가 보였다.

12시 30분, 이제부터 천황봉에서 문장대까지의 대간종주 시작이다. 등산하면서 처음으로 막걸리 한 모금 마시고는 문장대 가는데 다리가 무거워서 몹시 힘들었다. 입석대, 비로봉, 신선대 암봉에 올라 쉬면서 툭 터진 전망과 아름답게 물든 풍경을 보고 감탄하면서, 문장대에 도착하니 두시간이나 걸렸다.

문장대에는 많은 등산인들로 휴게소 마당, 바위가 울긋불긋했다. 우리도 철계단을 올라 새롭게 변신한 세상천지를 새롭게 바라보면서, 마음껏 기뻐했다. 그리고 다음에 갈 대간길을 눈으로 익히고 관망한 후, 내려와서 그때야 늦은 점심을 먹었다. 차가 법주사쪽에 있어서 더 가지 못하고 법주사로 하산했다.

 

 

 

  백두대간 19일째. 10월 22일 (목)

 

문장대-밤티재-늘재

 

오늘은 길이 매우 위험하다는 문장대에서 밤티재- 늘재로 가는 날이다.

백두대간종주를 두 번이나 끝낸 우리 회원의 남편인 노광철님과 동반했다.

바윗길이라던가 줄타기가 많은 등산로는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위에서 내려가는 것이 팔과 어깨에 무리가 덜 될 것 같아 문장대로 올라가서 시작하기로 했다. 화북으로 가서 시어동 주차장에서 1시간 30분만에 37명의 회원이 문장대에 올라섰다. 지난번에 보아 놓았던 ‘등산로 아님’ 이란 길로 들어섰다. 죄지은 사람처럼 살금살금 숨소리도 죽이고 헬기장을 통과하고 바위길 난코스로 접어들었다. 백두대간 종주자들은 어쩔수가 없다. 이길 아니고는 갈 길이 없으니 위험해도 가야하고 몰래라도 가야한다.

바위 틈새의 좁은 내리막길로 시작하더니 계속 바위를 끼고 오르고 돌고 하다가 본격적으로 줄타기가 있는 곳은 아찔했다. 큰 동아줄이 있으나 어려울 것 같아 노광철님이 줄을 매어 잡게 하고 하나하나 안전하게 잡아주어 무사히 내려왔다. 만약에 줄을 실수해서 놓친다거나 줄을 맨 나무가 뽑히기라도 한다면 잡아주는 사람과 같이 몇 백 미터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 나는 맨 뒤에서 나무가 흔들리는지 가슴 조이며 모두 내려간 후 내려갔다.

바위 구멍을 빠져나오면 다시 올라가고 또 좁은 구멍을 통과하고 줄타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일 만만치가 않았다. 그러기를 한시간 반정도, 큰 나무에 동아줄이 매어 있어 이곳만 지나면 끝이겠지 했는데 끝이 아니고 한참을 더 내려와서 야산에 이르러야 조용하고 아늑한 오솔길이었다. 밤티재에 내려오니 아침에 차로 지나간 길이었다. 문장대에서 시작한지 꼭 3시간만에 다 내려와 만나서, 다시 길 건너 산으로 들면서 한마디씩 한다. 무척 재미있었다고,

밤티재는 문장대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와 해발700m나 되는 산봉을 치솟아 올라가는 능선을 싹뚝 잘라 논 고개였다. 양쪽으로 깎아 논 직벽이 아주 높아 마치 협곡을 지나는 느낌이다. 도로 가에 수로를 공사중이며 동물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 산과 산을 잇는 다리를 놓는 것 같았다. 앞산을 가기 위해 공사중인 수로를 건너뛰는데는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또 노광철님이 많은 회원들 모두 손잡아 끌어 올렸다.

다시 솟구친 산봉을 오르느라 숨이 가슴 턱에 받친다. 장단지도 땅긴다. 공터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계속 오르막이다. 한 50분쯤 가면 넓은 암반에 서게 되는데 전망이 툭 터져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거기서 몇 발짝 오르면 바위를 오르게되고 구멍바위를 지나게 된다. 배낭을 벗고 몸만 개구멍으로 빠져나가야만 쉽다.

696.2봉에 서면 전망대나 다름없는 사방팔방 트인 암봉이다. 서북능선까지 쫙 펼쳐진 속리산의 뾰쪽뾰쪽 수많은 봉우리가 12폭 병풍처럼 보였다. 전방으로는 청화산이 아주 높게 보이고 그 뒤로는 백두대간상에 있는 조항산, 대아산이 겹겹이 아스라이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계속 내림 길로 완만한 길이지만 磨砂土 길이라서 잠시도 긴장을 멈출 수가 없는 길이었다.

밤티재를 출발하여 1시간 40분만에 늘재에 도착했다. 이 길은 화북에서 괴산군 청천면으로 가는 2차선도로이며 도로 가에는 ‘분수령’이라 쓴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장암리 시어동(09:10)-문장대(10:40)-휴식-문장대 헬기장(11:00)-줄타기(12:30)-밤티재(14:00)-전망대(14:50)-늘재(15:40)

 

 

 

백두대간 20일째. 2004. 11. 5.

버리미기재-곰바위봉-촛대봉661m-대야산930.7m (3시간)

 

대야산 코스가 험하다고 들어 겨울 되기 전에 갔다올 생각으로 오늘 갔다

9:30분, 늘재에서 버리미기재까지 이틀을 잡고 버리미기재로 갔다. 대야산까지 올라가서 밀재로 내려오던지 조항산아래까지 가던지 그때 가서 결단을 내리려고 여유있게 시작했다.

대간길로 들어서니 벌써 낙옆이 쌓여 길이 희미해서 앞으로 길 조심해야겠다는 생각 들었다.10여분 올라가니 헬기장이 있고 30분가니 10여미터 암봉을 내려서는 줄타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30명이 넘는 회원들 한사람씩 내려오는데 시간 많이 걸렸다. 그 후로 계속 암릉길로 암봉을 돌고 밧줄 타고 오르내리면서 아슬아슬 하면서 재미있었다. 곰넘이봉이 인상적이었다. 그 뒤로 대야산 정상이 아주 절벽으로 험하고 높게 보였다.

11시경 또 하나의 헬기장을 지나고 불란치재로 보이는 넓은 수림지대를 지나 다시 급경사를 20여분 오르니 촛대봉이다. 여기에서 보이는 대야산정상은 정말 숨막히게 다가온다. 표지목에는 촛대봉에서 버리미기재까지 1시간 20분으로 나와 있는데 우리는 2시간이나 걸렸다. 앞으로 대야산까지 1시간 30분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험한 길이구나 생각하며 촛대재로 내려왔다. 여기에 갈림길이 있다. 월영대로해서 대야산 오르는 길과 아니면 용추골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대간길은 직진한다. 1시간정도 올라가니 길도 좁을뿐더러 코가 땅에 닿는 험로다. 바로 정상을 머리에 두고 다 왔구나 하고 마음이 들떠있는데 위에서 두런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회원들은 나를 보고 ‘회장님 여기 못 올라가요!’ 하지만 설마 하고 올라가려니 회원들이 절대로 못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그렇게 난코스가 있다는 말 듣지 못했는데 생각하고는 도전하려하니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줄을 잡고 회원들 몇 명 올라가고는 그 뒤로 올라가려면 미끄럽고 위험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뒤돌아 아까 지나왔던 촛대재로가서 올라가자는 생각으로 1시간 오른 길을 내려왔다.

넓은 암반 위에서 점심을 먹고 아깝지만 내려와야 했다. 한참 계곡을 만나 내려오니 대야산으로 올라가는 삼거리길이 나왔다. 표지목을 보니 1시간 20분을 올라가야 했다. 시계를 보니 2시 오늘은 어짜피 정상에서 한 40분정도 가는 밀재까지 가고 더 이상 가지 못한다. 이 길로 우리 식구가 올라가려면 올라가는데만 2시간은 잡아야 하고 밀재까지 가서 내려온다면 아무래도 4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날이 저물 것 만 같았다. 몇 년 전, 이 길로 올라가는데 길이 험해서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음 코스에 가기로 하고 그냥 내려왔다. 대신 관광지로도 많이 찾아오는 이 용추골 몇 번을 왔어도 앞만 보고 다니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오늘 여유 있어 천천히 보며 감동하면서 내려왔다. 내려와서 정상에 올라간 회원들 전화통화해서 모두 만나 무사히 대전에 도착했다.

대전(07:00)-버리미기재(09:30)-밧줄타기(10:00)-헬기장(11:00)-촛대봉(11:28)-대야산(12:30)-촛대재(점심)-대야산갈림길(14:00)-용추골상가14:30)

 

 

 

백두대간 21일째. 2004년 11월 12일 흐림

 

늘재 384m~ 청화산 984m~갓바 위재 769m~조항산 951m~밀재(8시간 40분)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에서 어제와 오늘 비 온다는 무심한 소식 쓰여있다. 걱정을 하다가 가을비가 오면 얼마나 올까 아니면 비가 오면 요새 그 흔한 숯가마 찜질방 한번도 못 가보았으니 그리로 가던지, 아무튼 그냥 밀고 나갔다.

새벽 5시까지 간간이 오던 비가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출발할 때는 짙은 안개만 끼어 있을 뿐 차츰 개일 것만 같아 목적지인 속리산 아래 늘재로 향했다. 날씨 탓으로 빠진 회원들 많아 차안은 다른 날보다 헐렁했다.

오늘은 또 산행이 길다. 늘재에서 밀재까지 가려면 7시간하고 내려오는 시간까지 친다면 정상적으로 할 때 8시간은 잡아야 한다. 그래서 다소 긴 산행에 부담을 안고 출발해야만했다.

늘재에서 청화산까지는 흙산으로 소나무가 많은 아름다운 산이었다. 발이 땅바닥에 닿는 촉감이 포근해서 좋다. 그러나 마냥 즐겁기만 하겠는가. 저기압 상태로 짙은 안개비를 맞으며 오르는 길이라서 쉽지마는 않다. 점점 가파른 길이 시작되었다. 암릉이 이어지며 굵은 밧줄이 내려져 있어 줄잡고 40분 오르니 작은 공터 전망대에 ‘백두대간 중원지’란 까만 대리석비석이 세워져 있어 반갑다. 거리로나 지리상으로 보아 중간지점은 아니고 삼분의 일이 끝나고 두 번째 시발점인 듯 하다.

1시간20분만에 작은 헬기장이 있고 바로 앞으로(늘재3.5km 1시간20분 조항산10.3km 3시간30분)표지목과 둥그런 돌에 청화산984m란 표석이 있다. 생각보다 빨리 올라와 정상표석을 보니 반갑다.

갈림길에서 대간 길을 확인하고 조항산을 향해 간다. 여기서 960봉과 원적사로 가는 길이 있으니 이정표를 잘 보고 가야한다. 1시간 정도는 그렁저렁 갔는데 뾰족한 산봉 하나 올라선 후로는 날카로운 능선이 시작되며 뾰족뾰족한 암릉길이었다. 온 세상은 하얀 구름으로 꽉 차서 바다 속에 떠있는 암봉에 선 듯 보이는 곳 없으니 아무생각 없이 무아지경 속이었다. 캄캄한 밤 세상이 보이지 않을 때는 온갖 잡념으로 머리에 꽉 차있지만 하얀 구름 위에 있으니 세상과 단절된 듯 내가 신선이고 꿈속인 듯 감개무량하다. 이러한 아슬아슬하면서도 재미있는 암릉길은 계속되었다.

갓바위재에 도착하니 넓은 헬기장이 있고 양쪽으로 갈림길이 있었다. 왼쪽길이 의상저수지로 하산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항산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막바지 정상주변의 암봉들이 안개 속에 시커멓게 우뚝우뚝 서있는 폼이 협곡 속의 암벽 같았다.

숨가쁘게 올라 정상에 서면 조그만 공터에 조항산표지석이 나를 반긴다. 너무 정겹다. 마치 오늘 이 정상을 오기 위해 새벽부터 내달려 온 듯 했다.

여기에서 잠시 대간 길을 혼돈했다. 누군가가 직진표시를 해 놓아서 이곳에서 잘 못 가는 경향이 종종 있는 곳인가 싶어 직진으로 몇 발자국 가다가 아니다싶어 뒤돌아 왼쪽 길로 들어섰다. 몇 번 느낀 일이지만 리본이 많이 달린 곳으로 가면 정확하다. 10분 정도 내려가면 갈림길이 있다. 왼쪽은 상판 저수지길이고 대간 길은 오른쪽 고모치라고 쓴 곳으로 가야한다. 여기에서 회원들 모두 모여 확인하는데 앞서간 손혜순외 5명이 한번도 만나지 못해 잘 갔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안개로 인해 앞서가는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안개도 소리의 전파를 막는가보다. 야호! 하고 앞서간 회원들을 크게 소리쳐 불러보지만 되돌아오는 메아리도 없이 땅에 떨어지고 만다. 하는 수 없다. 그저 어느 곳이던 잘 내려가 있다면 좋겠다.

고모령은 길이 양쪽으로 훤하게 뚫렸다. 앞서간 회원들 또 기다렸다가 인원 체크하고 출발했다. 마귀할머니바위, 둔덕산 갈림길까지 계속 오르막길이다. 갈림길에 누가 써놓은 ‘밀재 45분’이란 이정표보고 이제 다 와가는구나 하고 마지막 힘을 발휘하여 오르고 또 오른다. 큰 바위와 집채보다 더 큰 집채바위를 지나고 내리막길이 시작되면서 오솔길이어서 잠시 길을 잘못 들었는가 하며 내려오는데 갑자기 난코스다. 겨울에 언 땅이라든지 비 올 때는 한발도 뛰지 못하게 미끄러운 길이다.

갈림길에서 본 밀재까지의 45분이 왜 그리 길단 말인가. 45분보다 20분 더 걸려 밀재에 도착, 표지목이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맞이했다.

 

깊은 산중에

장승처럼 우뚝 서있는 그대는

언제 보아도 다정한 친구

길가는 나그네가 묻기도 전에

가는 길 알려주고

서 있는 곳 알려주는 자상한 친구

눈보라 몰아치고

비바람 내려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행여 길 잃고 헤매지 않을까

왔다가 나 없어 그냥 가진 않을까

노심초사 기다리는

먼 산 언덕에 서서

두 팔 벌리고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이젠 끝났다. 아직도 주차장까지 가려면 1시간 20분은 더 내려가야 하는데도 다 온 듯 기뻤다.

내려가는 길은 순탄대로다. 윤기사한테 전화가 왔다. 앞서간 회원 5명이 다른 곳으로 내려가서 잘 있다고 말한다. 잘 내려갔다니 일단 안심이다. 너무 앞서지 말고 앞과 뒤 길을 이으며 확실치 않으면 가지 말라고 귀가 닳도록 얘기했지만 성질 급한 사람은 기다릴 수 없나보다.

오후 5시30분, 주차장에 도착하니 산 속은 캄캄한 초저녁이다. 윤기사가 오뎅국을 맛있게 끓여 놓고 우릴 기다렸다. 다 떠나고 없는 캄캄한 주차장에서 자동차 라이트 앞에 옹기종기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을 후 후 불면서 맛있게 먹는다.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회원들, 천진난만한 어린이같이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대전(6:30)-늘재(8:50)-백두대간중원지(9:30)-청화산(10:20)-점심(12:10~30)-갓바위재(13:00)-조항산(14:00)-갈림길(14:10)-고모치(14:35)-마귀할머니갈림길(15:15)-밀재16:20)-용추골주차장(17:30) 8시간40분

 

 

 

백두대간 22번째 2004년 11월 25일 30명 맑음

 

버리미기재- 장성봉915.3m- 악휘봉845m-주치봉683m-구왕봉877m-지름티재-은티마을

 

오늘 종주구간에 있는 장성봉 악휘봉 구왕봉은 평소에 한번 가보고 싶어 벼르던 산들이어서 기대에 마음 설레기도 했다.

대전에서 출발한지 2시간만에 버리미기재에 도착한 30명의 회원들은 산불조심으로 ‘입산통제’ 간판이 무색할 정도로 잽싸게 산속으로 진입한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꾸벅” 하고 들어갔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한자나 쌓인 낙엽이 초겨울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마른나무가지위로 작은 새 한 마리 파드득대며 옮겨 다닌다. 바스락대는 낙엽 밟는 소리 들으며 시몬의 詩, 한귀절 중얼대며 낭만에 젖어본다. 그런 감정도 잠시뿐, 벌써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이마에 두른 수건에 땀이 밴다. 큰 바위를 지나고 바위틈을 빠져 올라가고 바위전망대에 올라서니 아래로는 시원하게 흘러내린 산줄기와 건너로는 겹겹이 쌓인 산봉우리가 산수화 한 장 펼쳐놓은 듯 아름다웠다. 멀리로는 오늘 목적지인 하얀 희양산이 둥그렇게 보였다.

1시간 반만에 장성봉에 올랐다. 우뚝 솟은 장성봉은 전망이 좋았다. 고만고만한 산봉이 겹겹이 어깨를 겨루듯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장성봉이라 쓴 표석이 세워있고 그 앞으로는 자연석 돌 제단이 이층으로 놓여있어 이 고장 사람들이 정성들이며 아끼는 산인가 싶다. 이곳에서 절말 이라고 쓴 곳으로 내려서야 한다.

10분 내려오면 막장봉0.7km, 절말5.7km란 표지목이 세워있어 갈림길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었다. 조금 내려가면 갈림길이 있는데 리본이 많이 붙인 길로 무심코 내려가면 낭패다. 대간 길은 우측 능선길이다. 좁아진 능선 길로 접어들면 동네 야산같이 느껴지는 호젓한 숲속 길이다.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이렇다할 뚜렷한 것 없이 길만 따라 오르락 내리락 걷는다. 몇 고개 넘다가 고개에 올라서 점심을 먹는다. 푹 들어간 안부가 바람 없이 아늑할 것 같지만 높은 산봉이 더 바람이 없고 햇볕이 있어서 따뜻하다. 그래서 경관을 보면서 식사를 하는 것은 일석이조다. 밥맛이 꿀맛이다. 새벽에 나와서 간식도 못 챙겨 먹었으니 돌이라도 삼키면 뿌셔버릴 것 같은 식욕이다. 백두대간종주를 시작한 후로는 회원들 잘 쉬지도 않는다. 그래서 과일하나 마음놓고 깎아서 천천히 먹지 못하고 점심때만 기다린다.

12시40분, 앞으로 몇 시간을 더가야할지 모르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해지기전에는 가야지하는 약간의 조급한 마음을 서둘러본다. 13시, 오랜만에 헬기장이다. 헬기장의 왼쪽으로 갈림길이 있어서 지도를 꺼내보니 쌍곡리 절말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조금 지나면 조그만 전망대에 선다. 얼마 멀지 않게 보이는 우뚝 솟은 암봉에 울긋불긋 등산객들이 줄지어 오고간다. 아! 드디어 악휘봉. 5시간 걸린다는 그 악휘봉에 온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2시간정도면 구왕봉? 얼마를 더 갈지 모르지만 악휘봉을 보니 무척 반갑다. 10분만 가면 설 수 있는 저 멋진 악휘봉을 우리는 821봉에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했다. 지름티재까지 가서 은티마을로 하산하려면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여기서도 은티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이 있다. 건너 쪽으로 보이는 마분봉의 뾰족뾰족한 산봉들이 병풍을 둘러친 것처럼 아름답게 펼쳐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은 은티마을로 하산했는지 따라오는 기색 없이 우리만이 호젓한 산행이 또 계속되었다. 820봉을 오르고 왼쪽으로는 수백 미터 아슬한 낭떠러지의 난간 길을 가기도 한다. 큰바위 길을 지나고 수직으로 내려꽂은 암반을 지나 은치재에 도착되었다.

14시45분, 희양산에 가까이 왔나보다. “희양산 입산금지”라고 써 붙였다.

여기에서 다시 오르막이다. 이산이 지도에 나온 주치봉이구나. 이제 지쳤는지 숨이 차고 다리가 땅겨온다. 앞서가는 회원들도 속도가 좀 느려졌다. 이젠 오르막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간신히 젓 먹던 기운 다 들여 올라오니 또 큰 산 하나 떡 버티고있다. 하얗게 보이던 희양산도 어디로 숨어버리고 없다. 내리막길로 내려오니 산등에 묘가 하나있고 여기서도 은티로 내려가는 길이 뚜렷하게 나 있었다. 일행 중 7명을 내려보내고 우린 또 전진했다. 저 고개만 올라서면 구왕봉일 것이다. 이를 악물고 올랐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변고인가. 더 큰산이 떡 버티고 서있지 않은가. 있는 힘, 없는 힘 다 동원하여 기어오른다. 거기서부터 높고 낮은 산등을 여러 개 넘은 것 같다. 갑자기 그렇게 갈망하며 찾았던 희양산이 크나큰 바위 한 덩어리로 내 눈앞에 와있다. 이제야 다 왔구나! 구왕봉이 지난 줄도 모르고 오다보니 갑자기 낭떠러지 바위 난간에 섰다.

희양산 사진 한 장 짤칵! 찍고 내리막길로 접어드니 위험구간이 바짝 도사리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오던지 눈 내리는 겨울에는 한 발짝도 띄지 못하는 매우 위험한 험로였다. 조심조심 내려와 4시40분 희양산 아래 지름티재에 도착했다. 예나 지금이나 희양산으로 올라가는 진입로는 뺑뺑 둘러 철통같이 막았다.

은티로 내려오면서 곳곳에 입산금지판이 있다. 50만원 벌금에다 구속 무시무시하게 써 붙인 표지판과 플랭카드를 보고 내려와서 휴~ 한숨을 돌렸다.

 

버리미기재(9:10)-장성봉(10:40)-악휘봉입구(13:40)-은치재(14:45)-묘,하산길(15:35)-구왕봉(16:10)-지름티재(16:40)-은티마을주차장(17:40) 8시간30분

 

 

 

백두대간 23번째. 2004년 12월 2일 31명 맑음

 

이화령고개-조봉-황학산-백화산-이만봉-시루봉-희양산-은티마을

 

오늘도 역시 지름티재에서 이화령까지 가려면 긴 코스여서 역으로 타기로 했다.

여섯시간만 넘으면 무리인 회원들이 있어서 힘이 부치면 수리봉에서 하산할 생각으로 그러했다. 오전 9시5분, 이화령휴계소에 도착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을 지나가는 많은 차들이 쉬어갔지만 지금은 새로 난 빠른 길로 가기 때문에 차한대도 지나가지 않고 바람만 머물다가는 아주 조용한 옛 길이 되어 운치가 있었다.

왼쪽으론 조령산 진입로가 있고 오른쪽으로 우리가 갈 길을 찾아보니 돌계단으로 된 길이 있었다. 이 길이 책에서 본 군 막사로 가는 길이란 것을 얼른 알 수가 있었다. 우리는 무조건 올라갔다. 군인들이 통제시킨다는 말을 듣고 못 올라가고 허탕치면 어쩔까 하는 마음으로 살금살금 숨소리도 죽이고 올라갔다. 산허리쯤 갔을까 헌데 작은 나무에 백두대간표지리본이 주절주절 매달린 갈림길이 나왔다. 바로 위로는 철조망 울타리가 있고 대간 길은 산허리로 돌아가게 되어있었다. 안심을 하고 길 따라 올라갔다. 25분 올라가서 조그만 헬기장에 도착, 시간적으로 보아 조봉인 듯하다. 여기서부터 능선 길로 이어지는데 쭉쭉 뻗은 낙옆송 사잇길로 폭신폭신한 낙옆송을 밟으며 양쪽의 확트인 조망을 감상하며 걷는 이 즐거움이란 그야말로 태평성대다. 또 한가지, 무성한 잎사귀 때문에 보이지 않던 산의 내면을 보고 놀랐다. 수백 미터 낭떠러지로 어마어마한 분지를 보고 마치 발가벗은 내면을 속속들이 훔쳐보는 듯 신기했다. 오른쪽 건너로는 우리가 오늘 종주하게될 백화산에서 이만봉, 시루봉능선이 쭉 펼쳐있어 하늘에 금을 그은 듯 보였다.

10시 15분, 777봉에 올라섰다. 누가 여기가 조봉이라고 써서 나무에 매달아 놓았는데 누구의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넓은 헬기장이 있고 주변에는 억새꽃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이곳에서 1시간 못미처 황학산에 닿는다. 정상에는 작은 나무와 억새가 제멋대로 꺾여서 쓸쓸하게 느껴졌다. 강한 바람이 한차례 때리고 간 모양이다. 지금도 강한 바람이 분다. 빨리 바람을 피해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전망이 최고다. 조령산과 험상궂게 생긴 신선봉은 어느 곳에서나 잘 보였다. 그 아래로는 문경시내인지 제법 큰 도시가 산속에서 평화롭게 보였다.

또 헬기장이다. 공터를 넓히려는지 주위의 잡나무 모두 베어 버렸다. 이제는 막바지 오르막길로 암릉길이다. 순탄대로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을 만난 듯 루프를 잡고 내려서는길 암벽을 타고 돌고 돌아 올라선다. 언제 내렸는지 눈이 하얗게 쌓여있어 올 들어 처음 밟아보는 첫눈이다. ‘白華山’에 왔더니 이름대로 하얀 눈이 빛나고 있다. 옥녀봉, 마원으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20여미터 올라서니 백화산 헬기장이다. 삥 둘러 억새가 바람을 막아줘서 따뜻하고 아늑해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백화산 정상에는 “백두대간 백화산1063.9m”란 하얀 표지석이 있고 '괴산의 명산 백화산'이란 이정표도 있다. 양쪽으로 쭉 이어진 백두대간길, 오늘 우리가 밟고 온 길과 갈길이 힘차게 마주보고 있다. 조령산 대간줄기가 구불구불 보이고 산밑으로는 평지가 모두 계곡으로 보였다. 그만큼 높은 산이 밀집되어있는 지대란 생각이 들었다. 표지석만 사진 한 장 찰칵 찍고 12시 40분 또 갈 길을 재촉했다. 암릉길이 시작되었다. 50분쯤 내려오니 평전치란 표지석 있다. 분지안말로 내려가면 60분 걸린다고 쓰여있다. 오른쪽으로는 아찔한 수백리 낭떠러지길이 계속되고 왼쪽으로 가깝게 다가오는 덩치가 큰산은 무슨 산일까? 지도를 꺼내어보니 해발 991.4m나 되는 뇌정산이다. 그런데 일이 생겼다. 오늘이 두 번째로 나온 회원 하나가 급체를 했는지 가다 쉬고 가다 쉬며 힘들어한다. 사다리재에서 내려간다고 했다. 얼마나 아프면 모르는 길 혼자 내려간다고 할까, 몹시 안타깝다.

이런 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돌파리 의사노릇을 한다. 손을 주물러주고 양손가락을 따고 피를 뺀다. 아플 때 이런 방법을 하면 대부분 금방 낳는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앞을 보니 뾰족한 산봉 하나가 떡 버티고 아픈 사람에게 겁을 주고 있었다. 지도를 보니 곰틀봉이다. 창백한 얼굴을 보니 어떻게 올라갈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어쩔수 없는지 쉬고 쉬면서 정신력으로 잘 이기고 올라갔다. 뾰족한 곰틀봉을 지나고 이만봉에 닿기 전 뒤를 돌아보고 놀랐다. 아침부터 밟고 온 대간길이 한눈으로 보였다. 높고 낮음 없이 아스라하게 펼쳐진 산등은 이곳도 하늘금이다. 뇌정산으로 뻗은 능선과 이화령까지의 능선이 학이 날개를 편 듯 우와하고 부드럽게 보였다. 감탄 또 감탄하면서 몇 발작 올라서니 이만봉이다. 이만봉에서 잠시 쉬었다가 앞서간 회원들이 어디쯤 갔을까 궁금하여 전화했다. 그러나 통화가 되지 않는다. 빨리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이제 아픈 회원도 낳았고 시간이 빠듯하니 걸음을 재촉했다. 마당바위 용바위 암릉지대를 지나고 내리막길의 너덜지대를 지났다. 시루봉 아랫길이란 것을 짐작하고 내려가니 예감과 일치했다. 지름티재까지 가려면 아무래도 어두워 질 것 같아서 시루봉 갈림길에서 하산하려고 하니 벌써 모두 희양산으로 진입했다는 전화통화 했다. 맨 뒤에 오는 사람들 몇 명은 그 길에서 하산하고 나머지는 앞서가는 회원들 따라 바쁘게 걸었다. 성터를 지나고 희양산으로 갔지만 정상까지는 가지 않고 내려왔다. 암반을 내려오는 길 생각보다는 위험하지 않아 무사히 지름티재에 도착, 며칠 전 만해도 5시 반이면 환했는데 벌써 어둠이 저만치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비상용 건전지를 배낭에서 꺼내 주머니에 넣고 걸음을 재촉했다. 어두워도 다행스러운 것은 일주일전에 하산한 길이어서 마음이 놓였다. 은티마을 주차장에 오니 6시 20분, 캄캄했다. 오늘처럼 늦어보기는 처음이다. 윤기사가 오뎅국을 끓여놓아 갈증나던 김에 최고로 맛있게 먹었다.

 

이화령(9:05)-황학산(11:10)-백화산(12:00)점심후출발(12:40)-이만봉(15:00)-시루봉갈림길(16:00)-지름티재(17:20)은티마을 18:20)

 

 

 

백두대간 24번째.12월 16일 30명 맑음

 

큰재- 백학산(615m)- 지개재

 

백두대간상에서 제일 낮은 산봉을 지나는 곳이 오늘 큰재에서 지기재와 앞으로 가게될 갈령까지다. 하루종일 종주하면서 느낀 것은 다른 산보다 백두대간 표지목이란 백학산 단 한 곳뿐, 어디도 없었다. 오늘 표지리본이 소중한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동네가 근접해 있는 산이라서 임도가 많았다.

상주시 모동면 상판저수지를 지나 공성면을 넘나드는 큰재로 갔다. 안성분교 폐교를 지나 작은 솔밭으로 들게되면 밭이 보이고 목장 같은 건물이 보이는 야산을 걷게된다. 30분쯤 가면 임도가 나오는데 무슨 공사를 하는지 오늘도 포크레인이 산허리에서 산을 파헤치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물론 더 아름다운 산을 가꾸기 위함이라 스스로 판단하고는 지나쳤다. 작은 솔밭과 왕솔밭을 지나는데 양쪽 길가의 작은 나무를 베어내서 길을 넓혀진 곳도 있었다. 좁은 길에서는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얼굴을 툭툭 때려 따가웠다. 여름이라면 이곳 역시 숲으로 덮여서 길이 보이지 않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큰재에서 출발한지 3시간 10분만에 길을 내어 끊어진 건너 산과 이어지는 다리를 건넌다. 이곳이 개터재로 생각되는데 포장도로는 아니지만 왠만한 차는 다 다닐 수 있는 제법 넓은 산길이었다.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솔밭 속에서 점심을 먹는다. 떨어진 푹신한 솔잎 위에서 점심을 먹는데 솔나무 향기가 온몸으로 솔솔 파고들었다. 어느 박사가 하는 말을 들었다. 공기 좋은 산에서 한나절동안 있었다면 한사람이 마신 산소를 돈으로 환산하면 70만원 어치 된다고, 그러면 이렇게 맑은 한낮에 이 청청지대의 향기로운 산소는 값으로 친다면 얼마가치가 될까? 일주일동안 누적된 육체의 피로를 솔솔 솔향기가 녹여 주는 듯 상쾌하다. 아무리 좋아도 무한정 있을 수는 없다. 계획한 일은 끝내야 정신도 깨끗하다.

12시40분, 아직 갈 길이 멀다. 시간상으로 보아 반쯤 온 듯 한데 어둡기 전에 내려가려면 조금은 서둘러야할 것 같다. 쭉 내려갔다가 한참을 땀빼고 올라야한다. 능선에 오르면 큰 소나무가 있고 소잔등같이 평평한 길로 가서 뾰족한 봉에 올라서면 백학산이다. 아! 백학산의 표지석을 보니 너무 반갑다. 하루 내내 못 보았던 탓도 있지만 오늘 산중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이곳을 보기 위해 온 듯 기뻤다.

15분 내려꽂듯이 내려오면 넓은 임도를 만난다. 우측으로는 마을이 가까이 있는 듯 포장된 곳과 안 된 곳이 이어져 있었다. 임도를 건너 산으로 붙은 뒤 작은 솔밭길을 가면 임도와 논을 만난다. 조금만 더가면 개머리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넓은 산판으로 들게되면 과수원이 있고 그 길로 내려오면 새로 포장되어 깨끗하게 정비해 논 개머리재에 도착된다. 지도에는 비포장 도로로 표시되어 있으나 지금은 아주 시원하게 뚫린 도로다. 주변도 아주 넓은 산판으로 과수원과 밭이다.

오늘의 목표지점은 이곳이다. 그러나 시간이 이르면 개머리재까지로 정했다. 아직 오후 3시이니 2차 목표지점도 거뜬히 갈 수 있다. 이제 넉넉잡아 1시간 10분이면 닿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6시간 20분을 걸었으니 지치고 다리아픈 회원들이 있다. 나이가 있으니 너무 무리해서는 안 되는 회원들 몇몇은 거기에서 끝내고 우리는 길을 건너 다시 리본을 찾아 산으로 들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아서, 오늘도 해냈구나 생각하니 기쁜 마음으로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나뿐이 아니고 회원들 모두 그런 마음이었는지 빨리도 내달려 1시간도 못되어 지기재에 도착했다. 윤기사님은 벌써 개머리재로 가서 몇몇 회원들 데려오고 우리가 도착되면 뜨끈뜨끈한 국물 주시려고 또 오뎅국을 끓이고 계셨다.

 

큰재(8:40)-회롱재(10:30)-개터재(11:50)-백학산(13:30)-개머리재(15:00)-지기재(16:00)

 

 

 

백두대간 25일째 1월 6일

 

지기재-신의터재(280m)-윤지미산(538m)-화령재(320) 6시간

 

오늘 구간은 백두대간상 가장 낮은 지대로 마을과 가까운 동네의 앞산 뒷산을 걸었다. 오르막길이 없어 숨차는 일도 없이 여섯시간이 지루한 줄 모르고 지났다. 연이어 포근하다가 어제오늘 들어 쌀쌀한 날씨는 산에 와서 걸으니 따뜻한 봄날같이 땀이 나고 햇살도 눈부셨다.

지기재에서 묘를 지나 작은 동산길로 들어서면 솔밭과 잡목길을 지난다. ‘사각사각’ 등산화에 낙엽 밟히며 부서지는 소리가 오늘은 더 요란하다. 아마 낙엽이 떨어진 뒤로 날이 가물은 데다가 우리가 처음 걷는 모양이다.

어려움 없이 1시간 가면 신의터재, 시원하게 뚫린 2차선 도로다. 길가에 신의터재란 표지석과 벤취가 있고 깃발도 펄럭인다.

길을 건너 묘 마당 뒤로 난 길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동네도 보이고 찻길도 보인다. 1시간쯤 가면 묘목을 심은 넓은 밭이 나오고 더 가면 넓은 논도 있다. 천수답처럼 보이나 그 아래로 건물이 있는 것이 물 끌어올리는 양수장은 아닌가싶다.

이렇다할 눈에 띄는 것 없이 4시간쯤 걷다보면 오르막길이 나온다. 숨차게 올라가면 다시 또 오르막길, 정상에 오르면 오늘 지나는 산중에서 가장 높은 해발538m의 윤지미산이다. 표지석이 있고 나무에다 비닐코팅 표시기도 달아놓았다. 이제 거의 다 온 듯 화령재의 찻길이 보이고 판곡저수지도 보인다. 기념사진 한 장 찍고 내려꽂는 내리막길로 내려온다. 높은 산은 아니어도 위험할 정도로 경사가 심해 질퍽한 길이라면 붙잡을 곳도 없어 큰 위험이 따르는 산이었다. 가물어서 먼지가 풀풀 날려서 바지가 모두 하얗게되고 말았다. 내려오고 나면 잘 다듬어진 몇 기의 묘를 지난다.

임도에 내려서면 거의 다 내려온 듯 하지만 거기서 다시 산으로 올라 한참 능선을 타야 화령재에 내려선다. 화령재는 25번 국도로 상주와 보은을 왕래하는 도로다. 이곳에는 새로 지어놓은 팔각정이 있고 간이 화장실도 있다.

오늘은 산을 타며 묘를 볼 때마다 경상도 사람들 모두 효자로 생각되었다. 묘의 인물도 좋고 잡풀 하나 없이 부드러운 잔디로 잘 가꾸어놓아 보기에 아름다웠다.

지기재(8:30)-신의터재(9:30)-넓은밭(10:30)-윤지미산(13:20)-화령재(14:30)

 

 

 

백두대간 26일째 1월 20일 26명

화령재(280m)-봉황산(740.8m)-비재-못제-갈령삼거리 (7시간20분)

 

새벽부터 눈발이 내리더니 바람기도 차갑다. 이런 날이면 회원들 많이 참석치 않아 마음이 안타깝다. 대전에서 출발하여 상주로 가는 도중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산과 들이 온통 하얗게 쌓였다. 계속 많은 눈이 내린다면 돌아갈 때 길이 미끄럽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는데 점차 하늘이 맑아진다.

화령재에 도착하여 뒤돌아 찻길로 조금 걸어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는 도로 이정표와 상곡1리 마을 표석이 있다. 곧바로 우측 산으로 길이 있고 대간표지기가 잔뜩 달려있다. 여기서부터 서서히 1시간정도 올라가면 첫 번째 전망이 좋은 산봉에 올라서게 되고 몇 발짝 더 가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잠시 쉬면서 주위를 관망하다가 저 멀리 높이 보이는 산을 향해 발걸음 재촉한다. 눈이 제법 많이 쌓여 등산화가 눈 속에 푹푹 파묻힌다. 맨 앞에서 발자국하나 없는 하얀 눈을 밟으려니 촉감이 좋았다.

한참동안 별 어려움 없다가 숨차는 오르막 한차례 치고 올라서니 봉황산(740.8m)이다. 한동안 낮은 산봉이 이어지다가 오늘부터 서서히 높은 산봉이 시작되며 앞으로는 속리산부터 높고 험한 대간길이 시작되는 것을 예시해주는 듯 제법 높은 뾰족한 산봉우리다. 한가운데에 세워논 봉황산 표석을 보니 정겹다. 산에서 보는 설경은 언제 보아도 한 장의 그림 속이다. 겹겹이 비켜 서있는 산과 마을, 논다랑이의 풍경은 내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고향이다.

정상에서 내리막길이 매우 위험하다. 다시 완만한 능선이 시작되면 비재까지 별 어려움 없이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하는 내리막길이다.

비재는 대간길을 잘라 포장된 도로가 나있다. 길 건너로 산길을 잊는 철사다리를 설치해 놓아 대간 종주자들에게 직벽을 쉽게 오를 수 있게 해 놓았다. 다소나마 성의를 표한 듯 싶다.

이제부터 고난의길 시작인 듯 올라가는 길 만만치가 않다. 앞을 보나 뒤를 보나 높게만 보이는 산, 이제 시작하는 마음으로 도전해야되겠다는 마음 든다.

숨차고 다리 땡기는 일 오늘뿐이던가. 참자. 오늘 같은 산 이겨내지 못하면 앞으로 어쩔것인가. 높고 험한 첩첩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렵게 올라가 정상에 섰다. 지나왔던 봉황산이 저 멀리서 아주 높고 뾰족한 봉우리로 당당하게 서있다. 그리고 찻길 건너로 보이는 대궐터산, 두리봉이 울툭불툭 웅장하게 보인다.

여기서부터 뾰족한 산봉우리를 30여분만에 하나씩 수없이 넘었다. 지도에도 표시된바와 같이 전망대를 예닐곱 개는 지나쳤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굴곡이 심한 산이라서 올라갈 때마다 숨차고 다리 아픈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꾸만 반복되니 지치고 지루하다. 암릉길로 바위를 돌고 오르고, 내려가고 하다가 평퍼짐한 능선으로 떨어진다. 다 왔구나! 했을 때 도착된 곳이 못제, “못제. 갈령까지 1시간 30분”이라고 쓴 비닐코팅 푯말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이 원망스럽게 보인다. 이대로라면 아직도 몇 고개 또 가야한단 말인가. 앞에 또 산이 가로막고 섰다. 시계를 보니 2시 10분, 갈령 삼거리까지 1시간은 더 가야된다는 판단이 섰다. 이제 마음까지 지쳐온다. 몇 몇 회원이 뒤에서 따라오지 못하고 있어 난 기다렸다가 온 후에야 같이 출발했다.

체념하고 무작정 걷다보니 갈령 삼거리에 도착되었다. 화살표 한 갈령길을 보니 이건 또 무슨 운명인가, 숲속으로 들어가는 암봉길로 또 올라가는 능선길이다. 바람이 갑자기 세차게 불어닥친다. 회오리바람인 듯한 강한 바람이 나를 후려치며 발길을 재촉한다. 그래 이제는 저 고개만 넘으면 되겠지, 하고 암봉을 넘는데 날아갈 듯 한 바람이 또 한번 나를 휘청거리게 한다. 정신을 바짝 가다듬고 침착하게 걸었다. 지도에는 하산 길 20분으로 나왔는데 미끄러운 눈길이라서 인지 40여분 넘게 걸려 회원 모두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낮은 산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말라. 평소에 여러 번 느끼고 그때마다 말했지만 오늘 같은 산을 두고 한 말이구나 아니 앞으로 멀고 험준한 산길에서 잘 견디라고 미리 교육을 시킨 것이다.

화령재(8:25)-산불감시소(9:30봉황산(10:30)-비재(12:30)-못제(14:10)-갈령삼거리(15:10)-갈령(15:50)

 

 

 

  백두대간 27일째 (2005년 2월 17일)

 

갈령에서 천황봉까지(9시간 40분)

 

아침 7시, 대전에서 출발하여 보은까지는 없던 눈이 구병산부터 하얗게 덮어버려 은세계다. 속리산 쪽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쌓인 눈은 도로에도 군데군데 치워낸 눈덩어리를 볼 수가 있었다. 지난번에 내려왔던 갈령 고개는 빙판으로 녹다가 얼어버린 빙판으로 길이 미끄러워 살살 가서 평소보다 늦은 10시에 도착되었다.

갈령의 시커먼 비석 앞에서 시작된다. 오늘은 이곳에서부터 천황봉까지다. 해가 긴 봄이나 여름 같으면 문장대까지 가서 장암리로 내려와도 되겠지만 오늘은 천황봉에서 법주사로 내려가는 계획을 세우고 시작했다. 그러나 몇 발작을 걷고 보니 오늘 코스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약간 녹기 시작한 눈길은 여간 미끄러운게 아니었다. 한 발작을 옮기면 한 뼘씩은 뒤로 미끄러져 내려오다. 그렇다한들 어떠하겠는가 조금 늦으면 늦는 대로 갈 수밖에 없다. 갈령에서 백두대간길인 갈령삼거리까지 평소에는 40분이면 가는 길을 1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준비해온 시산재 음식을 차려 놓고 지난해 별탈 없이 대간종주 하게 해 주셨고 또 올해에도 예정하고 시행하고 있는 종주산행을 잘 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미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큰 일을 하고 있으니 그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일 것이다. 그렇다. 하늘의 돌봄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우린 음식을 나누어 먹은 뒤 형제봉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30분 후 형제봉에 도착, 뾰족한 암봉에서 형제봉이라는 표지목이 나무사이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듯 비스듬이 보였다. 여기에서 내림길로 보이는 계곡이 직경사

 

 

 

백두대간 28일째. (2005년 3월 3일 24명 맑음)

이화령에서 조령 3관문까지

 

산에 갔다와서 일주일만에 산행기를 쓴다. 그동안 호된 몸살을 앓은 이유도 있었지만 어쩜 다시 그곳을 생각하기조차 싫어서였을지 모른다.

나는 이번 구간을 어렵게 종주하면서 내가 믿었던 백두대간 지도책을 원망했었다. 물론 더 많이 알아보고 갔어야할 내 불 차례도 있지만 비 오고 눈 오는 날은 피하라는 말만했어도 다음으로 미루었을 텐데 그런 말은 없고 밧줄표시 한군데 위험표시 단 한군데만 표시해 놓았다. 그런데 오늘 가보니 그게 아니다. 우리 부녀자들뿐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이건 완전히 빙벽 등반이었다. 눈길이라서 길이 험하리라 예상은 했었다. 그러나 아이제만 착용하면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해내리라 자신을 갖았었다.

22명의 회원들과 이화령에서 조령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완만한 길로 시작해서

별 어려움 없이 40분만에 헬기장에 도착했고 다시 20분 올라가서 조령샘에 닿았다. 얼음 속에서 졸졸 흐르는 약수를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바가지로 떠 마시고 주능선을 향해 직코스로 올랐다. 거기서 정상까지 왼쪽으로는 아스라한 낭떠러지고 오른쪽으론 쭉쭉 뻗은 잣나무 숲이 이어졌다.

샘에서 30분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삥둘러 천지가 산으로 둘러 쌓인 곳, 내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는 기쁨을 맛본다. 뒤돌아 10시 방향으로 백화산 줄기의 대간 길이 한눈으로 보이고 오늘 내가 가야할 대간 길은 울퉁불퉁 시커멓고 하얗게 다가섰다.

다시 등산화 끈을 조이며 만반의 준비와 마음다짐을 하고 있을 때 한 산악회서 10여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서울에서 왔는데 뒤에 여자들도 포함에 한 30여명은 온 듯 했다. 험한 산을 앞에 두고 또 다른 팀이 옆에 있으니 마음이 한결 든든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다가 급경사 내리막길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눈 속에 빙판길에서 아이젠 없는 회원이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내 아이젠을 한 짝 벗어 주어 둘이 한쪽씩 끼고 걸으니 둘 다 가지 못하고 지체되었다. 길이 꽁꽁 얼어서 한 발짝도 옮기기 어려웠다. 서울에서 온 남자등반대장이 붙잡아 주어서 안전하게 안부에 내려섰지만 더 이상은 아이젠 없이 갈 수가 없었다. 로프가 없다면 한 발도 내려 설 수 없는 무척 위험한 길이었다. 앉아서 미끄럼 타고 내려올 수도 없는 급경사 길이었다. 이제 겨우 한 고개 넘었는데, 앞으로 몇 고개를 넘어야할지 모르는데, 어쩔 수 없이 회원중 세 사람을 신풍리로 하산시켰다.

같이 가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나는 앞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십 여전 전에 한번 왔던 기억이 있어 제일 위험한 고비는 지났다 생각하고 앞에 간 회원들을 따라갔다. 뾰족한 봉에 올라서니 회원들 모여 섰다. 웬 일인가? 했더니 줄잡고 내려가는 난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한 봉을 지나고 나면 또 닥치고, 몇 번을 반복하게 되었다. 신선봉을 지나칠때는 어딘지도 모르고 아래의 위험지대 <등산로 아님>으로 돌아왔다. 바위를 오르는 길이 눈이 쌓이고 얼어서 도저히 시도도 못하고 위험지대로 온 것이다. 미끄러운 바위길인 데다 아래는 낭떠러지, 몸을 안으로 기대며 죽을힘을 다해 기어올랐다. 이곳에서 엉엉 우는 회원이 몇이나 있었다.

오늘따라 왜 그리 뾰족한 봉이 많단 말인가? 간신히 올라가면 아슬아슬하게 내려가는 길은 가느다란 줄 하나에 생명을 걸고 내려와야 하는 가냘픈 목숨이 된다. 뒤돌아 갈 수도 없는 진태양난 이다. 줄 하나에 온 몸을 맡기고 놓치면 수백 리 낭떠러지, 미끄러져 떨어지면 누가 내려가서 끌어올 수도 없는 직벽이다. 어떻게 하던 빨리 이곳을 탈피해만 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끝나지 않는 험로가 이어지는데 질력이났다.

전망이 좋은 작은 산봉에 섰다. 시간상으로는 더 가야 될 것이라는 것 알지만 여기가 어디쯤인지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궁굼하다. 여지껏 표지석 하나 못 보았으니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무슨 간판이던 읽어 보고싶던 차에 세워 논 119간판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야 신선암봉이라니? 그러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것 아냐?

하는 수 없다. 전진하는 방법이외는 아무 묘책도 없다. 거기서도 줄도 없고 잡을 곳도 없는 높은 바위에 올라선다. 그리고 또 지긋지긋한 암릉길로 이어진다. 그렇게 1시간 30여분을 오고 나서야 갓대봉 갈림길이 나왔다. 휴~ 한숨 돌리고 물 한컵 들이키고 갈 길부터 쳐다봐진다. 조금전과는 다른 숲속길이 보여 마음이 놓였다.

눈길이지만 여기는 나무가 많아 붙잡을 곳이 있어 빨리 내려갈 수가 있었다. 나무사이로 넓은 길이 보이고 기와 지붕이 보여 조령 3관문에 다 왔구나 발이 더욱 빨라졌다.

드디어 악마의 소굴에서 벗어났다. 조용하고 한적한 고궁이 우릴 따뜻하게 맞아 준다. 종지박 빠듯이 들락대는 얼음 속에서 약수 떠 마시고 아이젠 벗고 3관문을 빠져 나왔다.

버스 주차장 까지 2km라고 써놓은 표지를 보고 넓은 길을 막 걷기 시작하는데 눈 속에 또 얼음이 있을 줄이야 쭉 미끄러지며 털썩, 육중한 몸이 떨어지는 소리가 3관까지 들렸을 것이다. 엉덩이 꼬리뼈가 다 부서진줄 알았다. 일어나 보니 뼈는 괜찮은지 걸을 수가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린 40분을 와서야 주차장에 닿았다. 우리의 앞과 뒤에서 같이 힘이 되어준 그 산악팀 그분들 참 고마웠다. 그분들 아니었다면 우리들 무척 당황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 뒤에서 떨어져 오던 그분들 잘 내려 왔는지 걱정이 된다.

왜 하필 그런 산에 가서 그런 고생을 하고 말이 많은가?

그동안 산행 경험으로 보아 고생은 각오했지만 자신했었다. 그날따라 조건이 너무 험했다. 서울에서 온 그 남자들도 무서웠다고, 우리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고 말했다.

나는 이번에 산을 타면서 우리 인간에게 분명히 초능력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어떻게 8시간 넘게 그런 고생을 하면서 지치지 않고 힘이 솟았는지, 그리고 수십 개나 되는 위험코스에서 아무사고 없이 무사했는지, 신이 도와 주셨다.

회원들한테 미안하다. 산이 나에게 앞으로 더 잘 하라고 경각심을 준 것 같다. 아무튼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내려와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화령(9:00)-헬기장(9:40)-조령샘(10:00)-정상(10:30)-신풍갈림길(11:45)-점심(13:40)-신선암봉표지판(15:40)-깃대봉갈림길(16:30)-3관문(17:00)-주차장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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