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알프스산- 해발 3,190 (1994. 7. 22~27)
( 대전 YWCA 산악회 C팀과 A팀 40여명 )
첫째날.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새벽 4시. 어젯밤에 꾸려 놓은 배낭을 다시 확인하고 그이의 전송을 받으며 집결 장소로 갔다. 외국 나들이는 처음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무척 설랬다. 일본은 선진국이므로 모든 시설도 잘 되어 있어 전자동식이 많다는데, 얼마나 촌놈행세를 할 것인지 걱정이었다.
대전에서 6시에 출발하였다.
김포공항에 여유 있게 도착해서 수속 절차를 마치고 9시 35분 비행기를 탔다. 가장자리에 앉게 되어 마음대로 밖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저 아래 우리의 강산이 보였다. 얼마쯤 가다 보니 동해 바다가 끝없는 수평선을 만들어 놓았고 파아란 바다 위에는 하얀 구름이 비누거품처럼 떠 있었다. 순간 얼마나 높이 떠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마냥 신기해서 창 밖을 내려다보며 소녀처럼 즐거워했다. 설렘과 기대 속에 하나라도 놓칠세라 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목적지에 다 와 가는지 하얀 뭉게구름이 가까이 둥실둥실 떠 있고 구름 속을 가로질러 빠져나갈 때는 기체가 흔들리며 요란한 소리도 났다. “야! 저기가 일본 땅이구나” 바닷가에는 길이 하얗고 선명하게 보였다.
필림사진을 스켄
북알프스산 정상에서
잠시 후 우린 일본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거기서 장장 2시간에 걸쳐 입국 심사를 받았고 너무나 치밀하게 검사를 해서 기분이 좀 상했다. 잠시 후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가 우리를 목적지로 인도했다.
조금 전 나빴던 기억은 금세 사라지고 느긋하게 창 밖을 보며 새로운 풍경에 젖어들었다. 동경 시내를 빠져 나가는데 도로가 막히는 것은 대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도심을 벗어나 시원한 고속도로를 달렸다. 길이라든가 주택, 산, 도시, 농촌 없이 모두 초록빛이었다. 허허벌판에도 집이 있으면 큰 정원수가 몇 그루씩은 있었다. 산은 파헤쳐 진 곳도 없고 묘소도 없었으며 산허리를 깎아 길을 만든 곳도 전혀 없었다. 우리 차는 미끄러지듯 아주 여유 있게 대자연을 뚫고 들길과 산길을 달렸다. 가까이 혹은 보이는 집들이 마치 별장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깜깜한 밤에 도꾸자와 롯찌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이 해발 1,700m라니 높고도 깊은 산중이다. 여기서 또 산장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렸다.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거리는 별들을 보니 새벽에 전송 나온 남편의 모습이 다정하게 떠올랐다. 두어 대의 지프차와 택시로 나누어 타고 산장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정상을 향하여.
둘째날.
아침에 산장을 나와 보니 멀리 보이는 높은 산에는 얼음덩이가 군데군데 하얗게 쌓여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공해가 없는 깊은 산 속이라서인지 아주 맑게 잘 보였다.
길은 대체로 넓게 나 있고 가파르지 않아 걷기에 수월했으며 날씨도 높은 산이라서 삼복더위인데도 불구하고 선선하여 초여름 날씨 같았다. 길가에는 우리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나무와 풀잎들이 있어 우리 나라의 산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해발 2,500m 고지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 내 몸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호다까 정상을 눈 앞에 두고 오르는데 다리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몇 걸음만 걸어도 너무나 힘이 들어 견디기 힘들었다. 나만 그런가 하고 회원들을 보니 몇 몇이 내 뒤에서 오지 못하고 있었다.
해발 2,900m 산장에 도착하니 날씨가 몹시 추웠다. 아래에서 보았던 얼음덩이가 곳곳에 큰 바위덩이처럼 얼어 있었다. 아래쪽은 푹푹 찌는 여름이었지만 이곳은 겨울 날씨 겨울풍경이라니 높은 지대의 온도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저녁에는 고소증 때문에 속이 미식거리고 잠이 오지않아 한 숨도 못 자고 아침을 맞이했다.
셋째날.
일출을 보기 위해 밖에 나오니 눈 앞이 캄캄하고 어질어질했다. 큰일이다 싶어 빨리 산장으로 들어가 진정시키려 고 잠시 누웠다. 이러다 정상에 가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속이 미식거려서 토할 것만 같다.
아침 밥이 나왔다. 오늘 하루 버티기 위해 억지로 밥 한 수저 물에 말아 먹었다. 정상에 다와 가는데 지금 포기하면 안 되지 끝까지 잘 버티자, 마음 다짐하고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올라 가다가 산장
아침 7시. 2,900m 고지 산장에서
해발 3190m 정상을 향하여 출발했다. 허뜬거리는 발걸음으로 오르기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길이 험했다. 거기에다 아침 햇빛이 너무나 강렬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바위만 보이고 아무런 생각도 없다. 정신을 차려서 어떻게 하든 무사히 올라가야지 그 생각뿐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올라가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와! 해냈다! 백경화가 지금 일본에 와서 일본에서도 최고로 높은 산 정상에 올랐다.
가슴이 벅차오르며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건강한 몸을 주신 부모님, 여기까지 보내준 우리 남편에게 감사한다.
여보!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이 일본 땅 높고도 높은 호다까산 정상에 올라와 감격하고 있습니다.
어느사이 내얼굴은 뜨거운 눈물로 젖어있다.
이 순간을 놓칠세라 눈물을 닦고 모자를 고쳐 쓰고 기념 촬영을 했다.
눈 앞에 펼쳐진 마에산, 기다산 여기저기 웅장한 봉우리가 늠름하게 버티고 있었다. 너무나도 큰 산이라서 등산객들을 바라보면 꼭 개미떼가 지나가듯 작게 보였다. 조금 내려가 넓은 바위에서 쉴 때 비로소 몸이 가벼워진 느낌을 받았다.
이젠 내 몸이 정상으로 돌아와 얼마든지 걸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거기서부터 2시간 가량 내려오니 조그마한 산장이 있었다. 너무 깨끗해서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하나 망설이기까지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맑은 공기와 신선한 바람 속에 내려오니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2시간쯤 더 내려오니 큰 냇물이 있었다. 옷이 땀에 흠뻑 젖은 우리는 그 물이 너무나 반가웠다. 하지만 누구하나 냇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손도 발도 담그는 사람이 없었다. 휴지 하나, 빈 병 하나 없이 깨끗하고 아무데서나 음식도 먹지 않았다. 정말 우리 나라 사람들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하며 우리는 택시로 묘우꼬우 온천 여관으로 갔다.
넷째날과 다섯째날은 시내를 관광하고 쇼핑도 하였는데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다.
며칠 동안 바쁜 일정 속에서 집 생각할 겨를도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기내에서 잠시 눈을 감고 그이와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이와 애들한테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는 사이 예쁜 목소리로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우린 공항에서 나와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탔다. 4박 5일 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나누며 피곤한 기색 없이 웃고 웃었다. 이제 길고 긴 산행과 여행이 끝났다.
대전에 도착하니 밖에는 가족들이 모두 나와 우리를 반겼다. 우리 그이와 아들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고 행복했다. 나는 그이의 손을 꼭 잡고 “그동안 잘 지냈어요?”하며 눈물을 글썽이면서 씨익 웃었다. (1994. 7.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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