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포토 에세이

수필- 손자의 가을 운동회

산의향기(백경화) 2013. 1. 12. 15:12

 

유년을 뒤돌아 본 손자의 가을 운동회

 

따르릉!~ 아침 일찍 손자의 전화다.

“할머니 오늘 우리 학교에서 운동회 해요.” 어린양 섞인 손자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메아리로 들려온다.

“그래? 할머니 이따가 할아버지랑 갈게” 말하고는 난 서둘러 아침상을 차린다.

 

 

 

 

 

옆에 사는 손자가 운동회를 한다하니 바쁜 일이 있지만 만사 제치고 참석을 해야겠다. 요즘 운동회라야 달리기하고 체조하고 간단히 오전에 마치겠지 생각하며 사진이나 몇 장 찍어 줄 생각으로 남편이랑 카메라 들고 나갔다.어제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 먹구름이 오락가락, 비가 올 듯 말 듯,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날릴 것만 같다.학교에 도착하니 하늘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경쾌한 음악이 나오고 벌써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젊은 애기 엄마 아빠들도 많이 와 있었다. 옛날처럼 돛자리를 펴고 먹을 것도 준비해온 가족도 여기저기 보였다.

 

 

 

 

 

학생들은 단체로 나와 음악에 맟추어 국민체조를 한다. 체육선생님이 앞에서 구령을 부치고 아이들은 즐거운 모습으로 음악에 맞추어 체조를 한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뭉쿨 해지며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솟는다. 검정 반바지 흰 샤스를 입고 머리띠를 두르고 60여년 전의 내 모습이 운동장에서 체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젖은 눈을 비비며 손자를 찾으러 운동장을 한 바퀴 삥 돌았다. 단체복을 입은 애기들이라서 쉽게 찾지 못하고 눈이 아프도록 찾고 있을 때 “지원이 저기 있어요!” 언제 나를 보고 왔는지 며느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리킨 쪽을 보니 우리 손자가 눈에 딱 들어왔다. 덩치가 크고 씩씩하게 생긴 우리손자 저만큼서 할머니를 보고는 활짝 웃고 있다.

 

나는 손을 흔들어 주며 사진기에 귀여운 모습을 담고 또 담았다.

 

 

 

 

 

운동회는 점점 고조되어 갔다. 청백 달리기. 반 별 달리기, 1학년 재롱무용, 할아버지 할머니 줄다리기. 아빠엄마 달리기. 가면 갈수록 보는 재미에 솔솔 빠져들었다. 2학년 달리기가 시작 되었다. 손자는 출발지점에서 서 있다. 나는 그 자리에 선 듯 내 가슴도 뛰었다. 어른들 줄다리기는 우리 부모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모습이었다.

 

한 달 전부터 운동장 복판 뙤약 볕에서 내내 연습하여 운동회날은 온 마을, 아니 온 군내의 축제로 이어졌던 어렸을 적 내 고향 초등학교 운동회.해마다 운동회 날만 되면 작은 오빠는 힘이 세여 부락대항이나 면 대항에 나가 모래가마니 짊어지고 달리기하면 1등으로 들어 왔다. 그래서 힘이 세기로 온 군에까지 장사라고 소문이 나 뽑혀 다녔다. 어느덧 나는 지금 그때를 상기하며 울렁이는 가슴으로 보고 있었다.

 

 

 

 

 

점심시간 직전에는 2학년의 모래주머니로 바구니 터트리기를 했다. 손자 팀 청군을 응원하며 보고 있는데 백팀의 바구니가 먼저 터져 ‘즐거운 점심시간’이란 만국기가 주루루 내려왔다. 점심시간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거웠던 기억이 또 밀려왔다.

 

오늘 얼마 만인가. 나의 살던 고향과 부모님, 친척들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옛날과 똑같은 운동회를 보았다. 이젠 점점 옛것을 찾아 토종 음식도 해먹고 풍속도 즐기는 시대가 온 것에 마음이 흐믓 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운동회를 열어 아이들에게 어릴 적 추억을 많이 쌓아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 마음 깊숙한 곳에 항상 고향과 친구와 부모가 있어 세상 살아가면서 거울처럼 가끔 꺼내 볼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다행스럽게도 하루종일 비는 오지 않았고 자의 운동회날 나는 아름다운 날들을 떠올리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