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에 올라
아직은 이른 새벽,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본다. 그리고 황산이 있는 쪽을 본다. 어슴푸레한 하늘과 산 위에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꽉 차 있다. 어젯밤에 비가 내렸는데 아직도 흐림인지 개었는지 알 수가 없다.
10여 년 전에 황산에 와서 짙은 구름 속에서 이틀을 헤매다 간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황산의 경치는커녕 옆에 있는 비래 석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10일 중에 7일은 구름을 끼고 산다는 황산, 오늘은 제발 짙은 구름이 아닌 아름다운 운무였으면 좋겠다. 짙은 안개로 10여 미터 앞길도 보이지 않던 그런 날씨라면 어쩌나 하고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40여명의 인솔자로서 바램은 우리 회원들 아무 사고 없이 행복한 해외등반이 되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맑은 날씨에 적당히 산허리를 에워 싸도는 아름다운 운무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어 본다
황산 아래 산장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새벽 5시경, 우린 모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차에 올랐다.
케이블카로 오르기 위해 황산 입구에 있는 자광각 케이블카 매표소로 이동했다. 차에서 내린 후 30여분을 숨 가쁘게 걸어서 올라간 후, 여섯 명씩 타는 케이블카를 타고 천천히 올라간다. 앞에 연달아 올라가는 곤도라가 마치 유리 상자에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가 듯 보였다. 올라갈수록 황산의 풍광이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암봉에 연녹색 나무로 치장하고 암벽 틈새마다 회귀한 나무가 모두 가꾸어 놓은 분재작품처럼 참 아름다웠다. 20여 분 동안 케이블카 안에서 황산의 비경을 감탄사를 연발하며 감상한 후,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크나큰 바위산을 등반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손으로 일일이 깎아 만든 돌계단을 한 줄로 나란히 올라간다. 돌계단은 걷기에 편하게 길을 잘 만들어 놓았다. 미끄럽지 말라고 거칠게 깎아서 얼지 않으면 미끄러질 염려도 없겠다.
제일 먼저 도착한곳이 옥벽루라는 곳이다. 여기서 잠시 한숨 돌리고 천도봉이라는 곳으로 향한다. 약 천년을 살았다는 영객송 소나무가 큰 바위틈에 있다. 어떻게 천년의 세월을 돌 틈에서 무얼 먹고살았을까.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비와 이슬만 먹고살아도 저렇게 오래 살 수 있다니 하나님이 가꾸시나 보다.. 영객송 앞에서 모두 신기한 듯 바라보며 기념촬영을 했다.
이젠 황산의 최고봉인 연화봉에 오른다.
연화봉은 해발 1.864미터로 황산에서 가장 높은 주봉이다. 날카롭게 솟아있는 암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오르지 한 줄로 올라가게 되어 있고 무척 가팔랐다. 양쪽의 조망은 확 트여 천지사방을 볼 수 있어 가슴이 뻥 뚫리듯 시원했다. 사다리 같은 계단길을 한 발 두발 오를 때는 마치 하늘 문을 향해 오르듯 높이 올랐다. 급경사에서는 아예 네발로 기어 올라갔다. 연화봉은 산 천체가 큰 바위 산으로 되어있고 길은 거의가 바위를 파서 돌계단으로 만든 길이었다. 우리의 몸과 딱 맞는 조폭으로 만들어서 쉬엄쉬엄 간다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드디어 최고봉인 연화봉 정상에 올라섰다. 사방팔방 황산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한눈으로 볼 수 있었다. 정상 표지석에는 빨간 글씨로 蓮花絶頂(연화절정)蓮花絶頂(연화 절정)이라고 써 놓았다. 그 앞에서 인증사진 한 장 찍고 내려오는데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겨우 대여섯 사람만이 설 수 있는 바위 꼭대기라서 아주 협소한 곳이었다.. 옥병루에서 보면 마치 연꽃같이 보인다 해서 연화봉이라 이름을 지었다 한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지그재그로 올라오고 내려가는 등산객들이 빨강 노랑 파랑, 꽃핀 듯이 아름답게 보였다. 연화봉에서 내려와 가이드를 따라 전진한다.
백보 운제라는 곳을 지나고 하늘을 향해 한 줄로 오른다는 일선천 (一線天)을 오르는데 온갖 힘을 다해 또 기어서 올랐다. 널따란 마당바위가 거북등 같아서 오어봉 이라 한다.. 여기 암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어딘가로 또 발길을 옮긴다. 여기서부터는 널따란 숲 속 길이었다. 아마 여기까지는 관광객들이 많이 왔다가 뒤돌아 가는 곳이라 생각되었다.. 가다가 숲이 우거진 산속의 백운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 기름에 볶고 튀기고 느끼한 중국식으로 나왔는데 배고픈 참이라 맛있게 먹었다.
이젠 또 걷기 시작이다. 자세한 일정표도 없이 따라 다니자니 궁금하다.. 산을 오르고 내려가고 운무는 들락날락해서 잘 보이지도 않고 좀 답답하다. 또 경사가 심해 보이는 산이 딱 앞에 막아섰다. 하늘은 금세 비가 쏟아질 것같이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금방 빗방울이 날린다. 구름이 온 산을 덥고 시야를 딱 가리고 말았다. 실망이다. 그때 가이드하는 말이 내일 다시 오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한다. 내일 다시 온다니 내일을 믿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황산에서 전망이 제일 좋다는 광명정에 올라섰다. 그러나 황산의 비경은 구름 속에 꼭꼭 숨어서 나올 기척도 없다.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다. 우린 그래도 걷는다. 구름 속에 무언가 허연 물체가 흐리게 보인다. 가이드가 비래 석이라 알려 준다. 나르는 새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 비래석은 황산에 왔다간 사람마다 사진으로 담아온 것으로 보아 꽤 유명한 돌인 거 같다. 그런데 옆에 있어도 잘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칠 뻔했다. 나는 비래석에 바짝 다가가서 손으로 만져 보고 비가 오는 바람에 사진 한 장 재빨리 찍고는 내일 다시 온다니 내일을 기약하고 서둘러 내려왔다. 배운루리는 곳을 지나고 나니 비가 그치고 금시 구름도 온 데 간데없다. 비 오고 개인 날처럼 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저 아래를 보니 또 하얀 구름이 쏜살같이 밀려오고 있다.
이제 비가 오던 바람이 불던 개의치 않고 우린 여전히 정해진 코스를 향해 전진한다.
황산에서 하이라이트인 서해 대협곡을 향하여 돌진한다..
하루 종일 높은 산봉을 몇 개나 넘고 지쳐있는 우리 회원들, 경치가 좋다 해도 쉬었으면 하고 앉아서 쉬고 있다. 가이드는 지쳐있는 회원들을 보고 여기서 정이나 힘들은 회원들은 쉬고, 갈 수 있는 회원들만 따라오라고 말한다. 나도 힘든 상태였지만 서해 대협곡으로 가는 팀에 끼어 맨 뒤에서 따라갔다. 층층대를 따라 한없이 내려갔다. 내려 가는대도 너무 힘이 든 나는 다시 이 길을 오를 생각 하니 겁이 덜컥 났다. 내려가는 것은 쉽게 내려가는데 오름길은 남보다 몇 배나 힘든 체력을 갖고 있는 나는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내려가기도 힘든데 어떻게 올라올 수 있을까. 포기할까? 생각이 머릿속에서 빙빙 돈다. 지금까지 수십 년을 산에 다니며 중간에 포기 한일이 없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어찌할까나.. 다리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앞에 내려가던 회원이 내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 회장님 빨리 내려오라고 부르며 손짓했다. 그래 죽기 살기로 가보자. 벌떡 일어나 조심조심 내려갔다. 내려가서 왼쪽 방향으로 길을 틀어 산허리로 접어들었다. 암벽에 사다리 줄을 매어놓은 아슬아슬한 길이 시작되었다.. 살금살금 걸으며 아래를 보니 와! 기막힌 절경이 펼쳐있었다.
깊은 협곡에 우후죽순처럼 서있는 뾰족뾰족한 바위의 군상들, 서로 자태를 뽐내기나 하듯 앞 다투어 하늘을 찌를 듯이 멋진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장가계의 서해 대협곡과 흡사했다. 멀리 산 위로는 조금 전 구름에 싸여 못 보았던 비래석이 새 한 마리가 되어 날아갈 듯한 모양새로 바위 꼭대기에 살짝 앉아 있다. 하얀 운무는 빠르게 물밀듯이 밀려 올라와 서해 대협곡을 돌아다니며 비경을 보여 줬다 가렸다 몰려다니며 장관을 이루었다. 잠깐 사이 대자연의 신비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변화무쌍하게 펼쳐진 것이다. 꼭꼭 숨겨놓은 별천지가 여기 있구나. 만약에 조금 전처럼 구름에 가려 보지 못했다면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모르고 갔을 텐데 생각하니 남들이 못 본 곳을 혼자만 본 듯 기뻤다. 너무나 아름다운 비경에 사로잡혀 걱정했던 오름길은 경치를 보며 올라오니 힘든 줄도 모르고 올라왔다. 더욱 진기한 풍경은 다 올라와서 내려다보니 벌써 구름으로 꽉 차서 산인지 바다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진풍경을 자아냈다. 조금만 늦었어도 우린 숨겨놓은 별천지를 구경 못하고 아니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운무는 그렇게 몰려다니며 황산에다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리고 다녔다. 와~ 나는 행운의 여신이다~ 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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