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머리 나쁜 사람을 보고 ‘새대가리’라고 말했던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산에 가서 새들의 일상을 단 몇 시간만이라도 지켜본다면 얼마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자기 가족을 보호하고 책임지며 살고 있는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볼 때 새들은 푸른 하늘을 날며 아름다운 세상을 구경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으로 보이지만 새끼를 낳아 키우는 것을 보면 다리가 부러지고 날개가 찢기어도 목숨을 걸고 새끼를 돌보며 지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아주 작은 새 일지언정 못된 사람보다 훨씬 나은 위대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TV에 가끔 등장하는 가슴 아픈 일이 생각난다. 자식을 구박하고 폭력을 행사하고도 모자라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고통을 서슴없이 주면서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끔찍한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제 한 몸 편히 살겠다고 제 자식까지 버리고 평생을 헤어 나올 수 없는 암흑 속에서 살아야 하는 불쌍한 인간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 새대가리만도 못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나는 가끔 촬영을 목적으로 새들이 사는 둥지를 찾아간다. 딱따구리나 호반새 후투티 새들은 주로 큰 나무가 많고 근처에 냇물이 있는 곳에 집을 짓는다. 큰 소나무나 느티나무 중간쯤 깨끗한 곳에 터를 잡고 날카로운 부리로 나무를 콕콕 찍어 파내서 큰 구멍을 내어 그들만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든다. 집을 장만한 한 쌍의 새는 그날부터 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생활이 시작된다. 알을 낳고 부화시키는 일은 물론, 암새가 할 것이고, 수놈은 들랑날랑 먹이를 사냥해서 사랑하는 가족을 부양한다.
새끼를 부화시키면 부부 새는 그날부터 부양가족이 몇이나 더 늘어났으니 바쁘다. 처음에는 어린것이라고 자잘한 애벌레나 여치 같은 것을 잡아 주둥이에 두리 뭉실 묻혀서 갖고 와 입을 벌린 새끼 주둥이에 넣고 있으면, 새끼들은 주둥이에 묻은 애벌레나 알을 깨끗하게 먹는다. 며칠이 지나 새끼들이 조금 더 크면 지렁이나 큰 물고기도 잡아다 주고, 먹이가 조금 크다 싶으면 입으로 잘게 씹어서 입속 깊이 넣어 준다. 입 안에 먹을 것을 가득 물고 와서 새끼들한테 나누어 주고, 나중에는 목 안에 삼킨 것까지 꾸역꾸역 토해내어 새끼 입에다 넣어 주는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새끼들은 계속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나날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새끼들은 어미, 아비 새가 오는 기척이 나면 밖을 내다보며 목을 쑥 빼고 짹짹거리며 입을 벌리고 있다. 어미 새는 먹이를 입에 넣어 주고는 먹는 것도 예쁜지 머리를 콕콕 찍어주며 사랑스러운 표현도 잘해준다.. 이런 풍경을 망원 렌즈로 한동안 보고 있으면 금방 새들의 생활과 모성애를 엿볼 수 있다. 마치 어린 자식들을 위에 하루 하루 품팔아다 먹여 살리는 인간들과 다를게 뭐있는가. 재수가 좋은 날은 맛있는 고기도 많이 갖다 주고, 어떤 때는 가벼운 손으로 들어와서 안돼 보이는지 이놈 저놈 애무해 주며 행복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이렇게 새들의 일상을 카메라로 들여다볼 때면 인간들보다 더 강한 그들의 모성애에 감동한다.
7월 어느 날은 호반새의 육추 촬영을 갔다.
촬영장에 가면 서로가 좋은 자리에서 찍으려고 싸우고 난리인 곳도 많은데 오늘은 좋은 분들이 와서 질서를 지키며 조용히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정말 고맙고 멋진 사진작가들이란 생각을 하면서 나도 세팅을 완료하고 촬영에 들었다. 조금 있으니 노란 새 한 마리가 파르르 날아와서 새 집 앞 나무에 앉았다. 무언가 꿈틀대는 먹이를 입에 꼭 물고 와서 우리를 한번 쓰윽 보더니 갑자기 후드득 날아오른다. 그런 후,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는 새집으로 가서 먹이를 새끼 입에 잽싸게 넣어주고는 휘리릭 날아가 버렸다. 재빨리 셔터를 눌렀지만 새가 이미 날아간 뒤다. 그렇게 10여 분 또는 20분 정도 후에 나타나서 먹이를 먹여 주었다.
새끼들이 이소 할 때가 되었는지 큰 물고기와 개구리, 가재 같은 먹거리를 물어다 주었다. 저녁때가 되어 먼 곳에서 온 사진가들은 떠나고 몇몇만 남아 있을 때 갑자기 호반새는 기다란 끈을 물고 와 집 앞 나무에 앉았다. 자세히 보이진 않으나 뱀인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재빨리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니 생각대로 큰 뱀을 물고 왔다. 떨리는 가슴으로 셔터를 사정없이 눌러댔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어미 새도 와서 맞은편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며 그네들만의 동작으로 얘기하는 것 같았다.
뱀을 물은 호반새는 어떻게 처리할까를 생각하는지 잠시 눈만 굴리고 있었다. 그때 뱀은 안간힘을 다해 꼬리를 추켜올리더니 순식간에 호반새의 목을 칭칭 감아 돌린다. 잡으려던 뱀에게 오히려 잡히어 죽게 생긴 호반새는 목에 감긴 뱀을 풀려고 온 몸으로 머리를 크게 돌리더니 급기야 목에서 뱀을 풀어놓았다. 기가 막힌 장면이었다.‘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알아서 풀리는 쪽으로 머리를 돌릴 수 있을까?’ 풀어진?’ 뱀은 다시 죽기 살기로 온 힘을 다해 요동친다. 뱀이 다시 목을 감으려고 하자, 이번에는 호반새가 순식간에 뱀의 머리를 물고 나무에다 탁탁 패대기를 친다. 저보다 몇 배나 긴 뱀을 나무에다 치려니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저도 같이 온몸을 돌리며 쳐댄다. 그때 호반새의 눈빛은 무섭게 번쩍이며 살벌했다. 나무에 온몸을 패대기 맞고 기절한 뱀은 축 늘어졌고, 호반새는 늘어진 뱀을 물고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 냇가나, 아니면 호젓한 곳으로 가서 어미새를 불러 작업해서 오늘 저녁은 가족이 모여 포식할 것이다.
이틀 후, 나는 다시 그런 광경을 더 잘 찍어보려고 그곳에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진가들로 꽉 차 있을 그 장소에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호반새 집을 보니 모두 떠나고 빈집만이 휑하게 있어 쓸쓸함만 감돌았다.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일까? 혹시 큰 뱀이 침투했는지, 아니면 누가 해코지를 했는지 몹시 궁금하고 의아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 사람 역시 호반새를 촬영하기 위해 온 사진작가인데 누구한테 들으니 어제저녁 때 이소 했다고 한다. ‘오라, 그래서 호반새는 새끼들을 이소 시키려고 그 뱀을 잡아 마지막 최후의 만찬을 했었구나!’ 조금은!’ 아쉽고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오면서 내내 어제 일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새들의 일상을 볼 때마다 사람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을 느낀다. 새끼들에게 헌신하며 가르치는 교육법을 보면 오히려 새한테 배우고 감동한다. 잘못하면 잡혀 먹힐 수도 있는 큰 뱀을 새끼들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히 싸워서 승부한 노란 호반새는 가장으로서 가족들 앞에서 어깨를 쭉 펴고 위엄을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너희들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당부의 말도 했을 것이다. 그 광경을 쭉 옆에서 지켜본 어미와 새끼들은 아빠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멋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정의를 앞세워 올바른 길을 가자하면 나보다 지위가 높은 자가 위에서 목을 꼭 조이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돈과 명예의 힘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시대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동물이나 사람,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명들은 약한 자는 강한 자에 지배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상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미새와 아비 새와 같이 가족을 돌보는 희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아래에서 따듯함과 비상의 의지를 불태우는 미래 세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소한 새끼들이 모두 건강한 성체가 되어 푸른 하늘을 날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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