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포토 에세이

기행문- 백제의 숨결이 흐르는 부여를 찾아서

산의향기(백경화) 2011. 5. 15. 20:59

백제의 옛 서울 부여를 찾아서

                                                         

 2010. 7. 18.  사진/ 글.  백경화

 

 

부여! 부여는 내 고향이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내 남편과 인연을 맺게 해 준 부소산이 있어 더욱 잊을 수 없는 곳이다.

48년 전 학창시절, 부소산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고 2년생 까까머리 학생.

2년 뒤 대학생 교복을 말끔히 입고 나타나 그와 나는 만나자마자 가슴이 쿵쿵 뛰었고 그 가슴으로 열열한 열애 끝에 5년 뒤 결혼했다.

지금은 삼남매 낳아서 모두 출가시키고 비둘기처럼 둘이 살면서 여가를 즐기며 지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연꽃 축제가 열리는 7월이면 꼭 와서 연꽃도 보고 지금도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시는 작은 오빠 내외분 모시고 맛있는 점심도 하고 온다.

오늘은 특별히 남편과 단둘이 연꽃도 보고 추억이 깃든 부소산을 산책하기로 했다. 남편이나 나나 부소산에 와본지도 결혼 전에 오고는 오늘이 처음이니 은근히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먼저 삼충사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백제 말 충신이었던 성충, 흥수, 계백의 위패를 모셔 논 사당에 가서 참배하고 나온 후 오른쪽 산길로 들어섰다. 빽빽이들어선 소나무 사이 7월의 산책길은 신선하고도 상쾌했다. 숲 속에선 새 한 마리 삐리삐리 삐리리 노래하며 우릴 반겨주었다. 옛날 하고는 별로 변한 게 없었다. 콘크리트 포장길이 아니고 흙을 밟으며 저 새소리를 들으며 걷는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올라가니 영일루 정자가 있고 백제시대 때 군량미 창고였던 군창지가 전과는 달리 울타리를 쳐 잘 보전되어 있었다. 

곧이어 반월성(반월루) 정자에 이른다. 이곳에 서니 부여 시내는 물론이고 백마강과 새로 놓은 아치형 다리가 빨갛게 보이고 강 건너 수북정, 구룡 평야가 한눈으로 보여 시원한 전망대였다.

 

 

 

영일루와 반월루 정자가 그때도 있었는지 생소하기만 했다. 벌써 이곳에 왔다 간지도 45년. 반세기가 다 되었으니 잊을 수도 있지 이름으로 보아 영일루는 해뜨기를 보는 곳이며 송월루는 달을 보는 곳으로 이름 지은 것은 아닌지....

 

 

 

 

  다시 발길을 옮긴다. 큰 소나무들이 너무 아름다운 소나무 밭을 지나고 내려가니 삼거리. 여기가 옛날에 어떤 아주머니가 물방개로 장사한 곳이다. 물을 담은 세수대아에다 물방개를 넣고 가에는 물건을 놓고 방개가 찾아가는 것에 당첨이 되는 것이다. 물론 돈은 내고 재수 좋으면 좋은 물건을 가질 수 있다. 하도 신기해서 한참을 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갈림길에서 사자루로 올라갔다.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도 멀고 높게만 보였던 사자루(송월루). 부소산에서 제일 높은 자리로 달구경을 했다는 송월루, 1919년에 다시 짓고 사자루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누각에 올라서니 아래로는 숲 사이로 푸른 백마강이 보이고 강 건너론 사대강 사업으로 모두 파헤쳐 있었다. 뭐가 들어설 것인지 큰 공사로 보인다.

돌계단을 내려가서 낙화암에 도착하니 예나 지금이나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낙화암에 올라가 기념사진 찍느라 줄을 섰다.

 

 

 

 

우리도 옛날처럼 똑같이 낙화암 정자아래 바위에서 걸터앉아 기념사진 한 장씩 멋지게 찍었다. 바위 난간으로 가보았다.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니 푸른 강물 위에 놀잇배가 유유히 지나가고 있다.

  ‘낙화암’하면 백제가 멸망할 때 의자왕이 거느렸던 삼천 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곳, 그 아름다운 궁녀들의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꽃잎 같다하여 낙화암이라 하였다 한다. 나는 잠시 동안 바위에 걸터앉아 ‘이 바위들은 그때의 역사를 잘 알고 있겠지’ 가만히 바위를 만져보았다.

고란사로 내려갔다.

 

 

 

법당 안에서 스님의 불경소리와 목탁 소리가 울려 나온다. 나는 잠시 법당에 들려 오늘 하루를 감사하고 나와서 절 뒤에 있는 약수터에 갔다. 고란사에 오면 누구나 절보다 약수와 고란초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나도 그 귀한 고란초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고란초는 보이지 않았고 바로 앞에 세워 논 알림판이 고란초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사람들에 의해 지금은 고란초가 멸종되었다고...... 옛날에는 이곳에 오는 사람마다 “저 풀이 고란초야!” 하며 바위틈에 나풀나풀한 연녹색의 풀을 보며 신기해하면서 약수를 마시고 갔는데 오늘 와 보니 어느 틈새에 살았는지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서운한 마음으로 나왔다.

 

 

 

 

다시 산으로 올라가서 시내로 내려올까 하다가 나온 김에 몇 군데 더 들림 심산으로 나는 “우리 백마강 황포돛단배를 한번 타볼까요?” 했다. 남편은 금방 내려가서 티켓 2장을 사 가지고 오고 우린 그래서 처음으로 배를 타 보았다. 낙화암이 잘 보이는 가장자리에 앉았다. 안내자의 해설이 시작되고 낙화암을 지날 때는 올려다보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갑자기 흥겨운 음악이 울려 퍼진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에 종소리가 들리어 오며~ 국어 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 어린 낙화암에 그늘 아래서~ 불러보자 삼천 궁녀를~ 이 노래가 추억을 불러 모아 온 강물 위에 아름답게 퍼진다. 나는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나 된 듯 이 순간이 행복했다.

굿두레에서 내려 부여 시내에 있는 정림사지로 들어갔다

정림사지는 1942년에 발굴 당시 고려 현종 때의 절로 정림사지란 이름이 쓰여 있었다. 국보 제 9호의 백제 오층 석탑은 1,400년을 버티어 오면서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오르지 백제의 숨결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음은 박물관으로 갔다. 1,500년 전의 유물을 보고 선조들의 생활과 지혜와 슬기,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을 발굴한 부여 송국리 마을과 무덤 모형이 있었으며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섬세하고 예술적인 금동대향로가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여자들은 그때나 지금에나 귀금속을 좋아하고 매우 사치하며 살았다는 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궁남지 연꽃 축제장으로 갔다. 해마다 점점 더 넓어지는 연꽃 방죽, 올해는 얼마나 넓어졌는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연꽃도 가지각색으로 많이 피어있고 가운데 궁남지 연못에는 시원한 분수가 음악에 마추 워 춤을 추며 조그만 황포 돛단배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연못 안으로 아름다운 구름다리를 놓아서 가운데 궁남지 정자에 가서 쉴 수도 있게 했다.

이제 부여 연꽃 축제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연꽃 관광지가 아닌가 싶다.

 

 

 

 

오늘처럼 연꽃 구경뿐만 아니고 백제의 향기를 고스란히 맛볼 수 있는 부소산을 산책할 수 있고 그밖에 백제의 숨결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 가까이에 여러 군데가 있어 연꽃 축제 기간에 하루 관광 코스로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13만 호가 살았다는 백제의 옛 서울 부여, 123년간의 화려했던 태평세월이 아른아른거렸다. 내가 이 고장에서 태어나 이 고장에서 산다는 것이 오늘같이 뿌듯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