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포토 에세이

옷핀 하나로 얻은 작은 행복

산의향기(백경화) 2013. 1. 13. 15:28

옷 핀 하나로 얻은 작은 행복  

 

사람들은 이 세상 인심이 각박하고 메말랐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나는 오늘 말 없이 나보다도 먼저 남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인정이 넘치는 아주머니와 그리고 친절을 베푸는 버스 운전기사를 보고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아름다운 미덕이 그대로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언제나 바쁜 생활에 항상 동당 대던 나는 오늘도 정신 없이 빠른 걸음으로 차를 타러 나갔다. 예식장이 멀은 데다 늦게 출발하였으니 마음도 몸도 급해 뛰다시피 가는데 허벅지에 뭔가 사르르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어 내려다보니 바지가 스르르 내려가고 있었다. 어머나! 재빨리 올리고 벨트를 만져보니 간당간당 미심쩍었던 단추가 떨어져 나갔다. 큰일났구나, 이 근방에는 옷 핀 파는 잡화상도 없는데 생각하며, 누가 보았으면 어쩌나하고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허리춤을 꼭 붙잡고 큰길로 나갔다. 마침 타려고 한 버스가 와서 탔다.

버스는 한가한 시간이라서 10여명만 탓을 뿐, 텅 비어 있어서 앞에서 두 번 째 자리에 가 앉았다.

 

 사진: 대전수목원

 

 

 

이젠 옷 핀을 하나 구하는 게 급선무였다.

“기사님! 혹시 옷 핀 하나 있으세요?

“왜요! 어데 뜯어졌어요?” 하고 돌아보았다.

“예”

기사는 앞에 늘어놓은 곳을 뒤적뒤적 하더니

“없는데요” 하면서 운전을 계속 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지 잠시 후 앞에 달린 거울을 보면서 또 물었다.

“어데 뜯어졌어요?”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벨트를 한쪽 손으로 꼭 잡고는 옷 핀이 아니더라도 뭐 쓸만한 게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렸다.

기사는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지 무언가 자꾸 찾더니

“이걸 로 안될까요?” 하면서 주는데 보니 버스시간표 거는 빨간 집게하나를 건네주었다.

안될 것 같지만 다급했던 나는 임시 방편이라도 될까싶어 받아서 꼭 집어 물고 이리저리 잡아 당겨보니 쑥 빠진다.

“안되네요” 하고 주었다.

 

 

 

 

그런데 바로 내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옷 핀 찾는 것을 알고

“이것 찾아유?” 하고는 옷 핀을 하나 보였다.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예, 어머! 저 줘도 되요?” 하며 반가워서 빨리 받으려하자 그 아주머니 하시는 말씀,

“안유 쓰고 줘유, 어디 딸려구 그런 거 아녀유?”

나는 그 핀을 보자 급해서 “아주머니 파세요, 아주머니는 다시 사고” 그러면서 나는 순간 옷핀이 무슨 값 비싼 물건 흥정이라도 하듯 다짜고짜 팔라고 했다. 그리고 쳐다보니, 나보다는 몇 살 위로 보이는 그 아주머니도 나처럼 한 손으로 허리춤을 꼭 잡고 있었다. ‘아! 순간 안되겠구나’ 하면서 그 상황이 얼마나 우스웠던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자 기사는 또 다시 플라스틱으로 된 동그란 것을 찾아주면서 혹시 그 안에 바늘이 들어 있을지 모르니 열어 보라고 주었다. 받아보니 정말 핸드백에 넣고 다니는 바늘 집 같아 이젠 됐구나 싶었다. 나중은 둘째고 우선 바늘로 꿰매고 보자, 하고는 바삐 열려고 하니 열리지 않았다. 어떻게 여는 것인지 눈도 코도 없어 억지로 열려다가 손톱만 꺾여졌다.

 

 

 

 

옆에서 쳐다보고 있던 50대 신사 아저씨 한 분이 “이리 줘 보세요” 하고 받아가더니 그분도 열려고 애쓰지만 안 되었다.

기사는 어느새 뺀찌를 찾아들고 부수기라도 할 기세로 달라했다. 그러던 차에 그 아저씨가 열었다. “바늘이 아니고 거울이네요 이것 보세요” 하고 나를 준다. 나는 무심코 받아들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얼굴이 울상이었다. 게으른 여자여! 오늘 당해 보거라. 나도 비웃어 주었다.

나는 거울을 보며 허망함과 절망감을 느꼈다. 보다 못한 그 아주머니가 다시 그 핀을 손에 빼들고 나를 주었다. 나는 이젠 됐구나 하면서 “어디서 또 하나 났어요?” 반가워하며 받으려고 그를 넘겨다보니 아까와 똑 같이 한 손은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또 실망이었다. 아무리 내 처지가 급하다고 해서 처음 본 사람한테 그것도 그 핀이 없으면 나와 똑같은 처지인데 덥썩 받을 수는 없었다.

“저 주시고 어떻게 하려고요?” 하니 이젠 다 왔다 하며 가지라 했다.

“그러면 집에 가시는 중이세요?” 하니

“안유 계하러가유” 했다.

어디 쯤인가 밖을 보니 가장동 한민쇼핑 앞 이였다. 나는 이 핀이 아니면 허리춤을 꼭 잡고 다녀야 한다는 급한 생각에

“그럼 저 안에 가면 잡화상회가 있을 거예요. 저 안에 들어가서 사세요.” 하고 아주머니한테 핀을 받아들고 주머니에 돈을 넣으려 하니, “아녀유” 하고 뿌리쳤다. 그러자 버스기사는

“아줌마! 여기서 내리신다고 안 하셨어요? 빨리 내려야지요!”

내릴 때가 되었는 데도 나하고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아줌마에게 웃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아줌마는 그때야 일어나 한쪽 손으로 허리춤을 붙들고 내려갔다. 내려가는 아주머니의 주머니 앞에 옷 핀이 하나 보였다. 옆에 아저씨가

“아줌마 주머니에 옷 핀 또 하나 있네.”

“어디유? ”

“주머니에”

“어매, 나보다 잘 보네.” 하며 급하게 내려갔다.

정말 아줌마도 몰랐던 핀이 하얗게 하나 보였다. 다행이었다. 이젠 내 마음도 안심이 되었다.

평소에는 하찮은 핀 하나가 이렇게 소중할 줄은 몰랐다. 소중한 핀도 얻고 아름다운 마음까지 얻게 되어 무척 흐뭇했다.

“그래도 그 아줌마 자기보다 젊다고 자기 꺼 빼주고 가네요. 나 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닌데.” 버스기사의 말이었다.

모처럼 마음씨 고운 기사와 아주머니 만나 아직도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구나싶었다. 흐뭇해서 마음놓고 한참을 웃었다. 꼭 실성을 한 사람처럼 나 혼자서 피식피식 웃었다.

 

           

 

 

집에 와서 저녁식사 하며 남편과 어머님께 그 예기를 하였다. 처음에는 주책 떨지 않았나 하며 남편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나중에는 웃느라 밥상에 밥알을 다 뿜었다. 어머님은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다 본체만체 하지 않고 자기 꺼 빼어주고, 너 같으면 니 꺼 빼주겠니?” 하고 쳐다보셨다.

“못 빼주지요. 정말 그런 사람 드물지요.” 아주머니도 좋지만 그 버스기사도 참 좋은 사람이었다. 모두가 그런 사람들만 모여 산다면 참 즐겁게 마음 편히 살텐데....

나는 그후로 옷핀을 한 열 개는 갖고 다녀야겠다며 일부러 도마동 시장에 가서 샀다. 주절주절 등산배낭에 달아놓고 옷 속에도 달아놓고 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은 한 개도 없다.

그렇지만 그 후로는 무엇인가 남을 위해 베풀고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결심만은 흩어지지 않고 항상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