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포토 에세이

설악산 공룡능선3.-산행기

산의향기(백경화) 2013. 1. 13. 15:31

설악산 공룡능선

 

지난번 설악산에 대해서 쓴 산행기에 설악산은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란 글을 썼다. 이번에도 또 그 말이 하고싶다. 몇 년만에 모처럼 단풍다운 단풍을 본 것 같다. 올해 비가 자주 내려 농산물에 피해가 많아 단풍 역시 좋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너무 아름다운 설악산의 단풍을 보고 황홀경에 빠졌었다. 

공룡능선을 가려면 우리 여자들은 일일 코스로는 너무 힘에 버겁다.  그래서 여유있게 1박 2일 코스로 가서 대피소에서 자고 아침에 일찍 공룡능선으로 출발하면 공룡능선과 일출을 볼 수 있고 산뜻한 아침 풍경을 볼 수 있어 좋다. 그리고 산행하기에도 제일 수월하다. 이번에는 대청봉을 보기위해 한계령에서 시작하여 대청봉을 갔다가 휘운각대피소에서 하룻밤 묵을 예정이다.

 

대전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하여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하니 9시. 어제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더니 아직도 구름으로 꽉 찬 하늘은 좀처럼 얼굴을 보일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오후에는 반짝 갠다는 기상예보를 믿고 그다지 염려는 되지 않아 방수 자켓을 입고 산행은 시작됐다. 어젯밤에 잠 못 자고 오랜 시간을 버스 타고 와서 인지 한계령의 가파른 오름길은 무척 힘이 든다. 나무들은 이제 고운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로 물들기 시작하여 분주한 모습들이다.

 

몇 고개 넘고 산허리를 휘돌아 2시간쯤 오르니 대청봉 가는 길과 귓떼기봉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이제는 능선타는 길로 어려움은 끝났다 생각하며 좋아했는데 이슬비는 내리고 돌길은 미끄러워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었다. 게다가 짙은 구름 때문에 전망이 보이지 않으니 바짝 긴장하고 걷는 길 뿐이다. 중청봉에 이르렀으나 대청봉은 보이지 않는다. 소청봉에서는 갑자기 비바람이 휘몰아쳐서 날아갈 것만 같았는데 휘운각 가는 길로 내려서니 잔잔하고 아늑했다.

오후 4시경, 40명 전원이 휘운각 대피소에 무사히 도착, 짐을 풀어 밥하고 국을 끓여 뜨겁게 먹고 나니 몸과 마음이 편안했다. 밤에는 50여명이 한방에서 자려니 잠이 오지 않았다. 지리 새우다가 아침을 맞이했다.

 

 

2일 아침,

날씨가 맑게 개었다. 어제처럼 비 오고 흐린다면 공룡능선을 포기하고 하산한다 말했더니 모두들 염려하다가 맑게 개인 하늘을 보고 기뻐한다. 이제 신이 나서 바쁘게 움직인다. 밥하고 찌개 끓여 아침을 단단히 먹고 드디어 7시에 공룡능선으로 출발했다. 이제야 설악산이 온 몸을 들어냈다. 아침 햇살이 설악산에 내려 비치니 설악산은 오색향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그런데 길이 매우 험했다. 3년 전에 왔을 때는 이렇게까지 험하지 않았는데, 그렇지만 힘들지 않고 재미있다. 큰 고개 올라설 때마다 웅장한 암봉이 장엄하다. 오른쪽 아래로 보이는 천불동과 왼쪽의 가야동 풍경이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을 어제는 하나도 못 보았으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마등령에서 보는 공룡능선의 경치는 더욱 환상적이었다. 힘차게 솟구친 바위와 곱게 어우러진 단풍이 그렇게 예쁠 수 가없었다. 마치 어제 종일토록 비 맞고 고생하며 못 보았던 것 보상이라도 해 주듯 오늘 너무 아름다운 모습 보여주었다.

이렇게 기쁠 때는 언제나 나를 자유롭게 이곳까지 보내준 남편이 떠오른다.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난다.

비선대에 와서 반석위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좋은 이미지는 영원히 가슴에 담고 남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남을 미워했던 마음은 저 깨끗한 물로 정화하여 마음속에 넣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  

일주일에 이렇게 하루씩 나와 산을 찾으며, 얻는 것은 무엇인가?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나는 산에 가서 얻은 것이 많다. 그러나 얻은 것이 무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빈 껍데기다. 무소유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산과 나무, 바위, 시냇물, 하늘, 구름 이런 것들하고 있는 시간이 좋기만 하다.

이제 산행은 끝났다. 이틀동안 아무 사고 없이 마침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우린 에너지를 모두 써 버렸으니 충전해야 한다며 낙산사 해수욕장으로 차를 돌렸다. 물결치는 동해바다와 하얀 백사장을 보며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 한잔을 따라놓고 갓 잡아 올린 생선회를 한 점 입에 넣으니 깨물 것도 없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2003년도 10월.씀)